진정한 사랑만이 시기와 질투의 감옥에서 벗어나게 해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에 이어 사랑은 “시기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 우리 속담에 ‘사촌이 밭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이 있다. 이처럼 인간의 그릇된 본성은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특징이 있다. 시기는 반드시 질투에서 비롯된다. 시기와 질투는 옛사람의 성품이다. 사도 바울은 시기와 질투에 속한 사람들을 영에 속하지 못하고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들로 정의했다(고전 3:3).
심리학자 케이치프 노이드에 의하면 인간이 벗어나기 힘든 6가지 마음의 감옥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소위 공주병이나 왕자병과 같은 ‘자기도취의 감옥’이고, 둘째는 다른 사람의 단점만을 보고 험담하는 ‘비판의 감옥’이다. 셋째는 온 세상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절망의 감옥’이며, 넷째는 지나치게 과거에 연연해 현재를 낭비하는 ‘과거지향의 감옥’이다. 다섯째는 자기의 것은 하찮고 남의 떡만 더 커 보이는 ‘부러움의 감옥’이고, 여섯째는 남이 잘되는 것을 보면 괜히 배가 아프고 자꾸 헐뜯고 싶어지는 ‘시기와 질투의 감옥’이다.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약 3:16).
유대인의 지혜 모음집 탈무드는 “질투는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그러나 한 가지도 올바로 보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렇다. 시기와 질투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세상을 온전히 볼 수가 없고 형체도 없고 실체도 없는 마음의 감옥에 스스로 갇혀버린 불행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성령의 충만함을 통한 진정한 사랑은 시기와 질투를 극복한다. 고난에 처한 자와 함께 슬퍼함은 물론,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며 다른 사람의 복을 나의 일처럼 함께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롬 12:15).
진실하고 참된 사랑을 가지고 질투를 극복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이다. 그는 일국의 왕자였고 왕위를 물려받을 사람이었다. 그에 비해 그의 친구 다윗은 평민 출신이면서 양치던 사람이었지만 민중의 폭발적 인기를 얻으며 요나단의 경쟁자로 등장했다. 하지만 요나단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보면 그 아버지 사울과는 달리 다윗을 향한 시기나 질투의 흔적이 없다. 그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 대답은 사무엘상 20장 17절에 있다. “요나단이 자기 생명을 사랑함 같이 다윗을 사랑함이었더라.” 이처럼 진정한 사랑은 시기하고 질투하지 않는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 15:13).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