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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제2차 선교여행-아덴 선교(행 17:16~21)

제2차 선교여행을 떠난 바울은 그리스 북부 마게도냐의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를 거쳐서 남부 아가야의 아덴에 이르게 되었다. 아덴은 오늘날 그리스의 수도인 아테네로 BC 6~5세기 고대 그리스 문명의 중심지였다. 로마제국에 점령되어 그 옛날의 영화와 영향력을 잃고 말았지만 바울 시대에도 그 흔적의 대부분은 남아 있었다.

아덴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에피쿠로스, 제논과 같은 철학자들의 활동 무대이자 고대 민주주의를 꽃피웠던 지역이기도 했다. 다신교를 숭배하는 아덴에는 수많은 신전들과 조각상들이 곳곳에 자리했는데 그중 주신(主神)은 아덴의 수호 여신으로 받든 ‘팔라스 아테네’로 아덴 사람들은 그를 위해 파르테논 신전을 지어 헌납했다.

유대인들의 박해를 피해 베뢰아를 떠나 혼자 아덴에 온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를 기다리면서 아덴 시내를 돌아보다가 우상들과 신전들이 온 도시에 가득한 것을 보고서 격분을 참지 못했다. 아덴 사람들과 여행자들은 휘황찬란한 신전들과 조각상들에 압도되어 찬탄을 금치 못했겠지만,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라는 신앙으로 철저하게 무장된 바울(고전 8:4~6 참조)의 눈에는 우상전시관과 우상창고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웅장한 예술 작품이냐 아니면 역겨운 우상 놀음이냐 하는 것이 결정된다. 그러므로 바울의 격노는 구약 비느하스의 전통을 잇는 ‘거룩한 분노’라고 할 수 있다(민 25:11 참조).  

그리하여 바울은 안식일에는 회당에서 유대인들과 ‘경건한 사람들’(이방인 유대교도)에게 복음을 전했고, 평일에는 장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우상 숭배를 버리고 예수를 믿으라고 했다. 나중에는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과도 논쟁을 벌이게 되었다. 에피쿠로스(BC 314~270)를 추종하는 철학자들은 행복과 쾌락을 삶의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여기고 신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평온한 삶을 누릴 것을 강조했다. 제논(BC 340~265)이 창시한 스토아 철학은 우주를 다스리는 이성(로고스)에 순응하여 자족하는 삶을 이상으로 여겼다.

아덴 철학자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갈렸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라고 했다. 여기에서 ‘말쟁이’로 번역된 단어는 매우 경멸적인 표현으로 ‘새가 여기저기서 부리로 씨앗을 줍듯이 이곳저곳에서 지식 부스러기들을 주워 모아서 소화도 못한 채 마구 떠들어대는 지식 행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한 마디로 바울의 말을 철저하게 무시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바울을 새로운 ‘이방 종교’를 전하는 자로 여겼다. 그가 ‘예수’와 ‘부활’을 전파하는 것이 마치 ‘예수’라는 남신(男神)과 ‘부활’(성경 원어로 ‘아나스타시스’라는 여성 명사)이라는 여신을 전하는 것으로 잘못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덴 사람들은 바울 일행을 내치지 않고 그들을 아레오바고 광장으로 이끌고 가서 바울이 가르치려 하는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듣고자 했다. 그들이 이렇게 한 것은 아덴의 도시 정서가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했기 때문이다(행 17:21). 이처럼 아덴은 고대 사회에서 매우 드문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도시였다. 이렇게 해서 바울은 자연스럽게 ‘아레오바고 설교’(행 17:22~31)를 선포하게 된다.

고대 그리스 문화의 중심지 아덴에서 복음은 인간 문명, 우상 숭배, 철학, 지적 호기심의 총화(總和)와 맞부딪치게 된다. ‘그리스도와 문화’가 만날 때 어떻게 복음을 전할 것인가? 우리는 계속될 바울의 아레오바고 설교를 통해 그것을 보게 될 것이다.

김호성 부목사(목회신학)

 

기사입력 : 2022.06.12. am 09:35 (입력)
김호성 목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