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절기는 페사흐(유월절), 샤부옷(오순절, 칠칠절), 수코트(장막절, 초막절)이다. 이 세 절기는 성경에서 언급하는 가장 큰 절기(히브리어로 하그 하가돌)이다. 이 외에도 크고 작은 절기들이 있다. 그러나 성경에 나온 절기중 부림절이 가장 규모가 크고 유명한 축제다. 매년 2월과 3월 사이에 있는 부림절에 유대인들은 다양한 코스튬과 화장을 하고 거리에 나선다. 이 절기에는 특별히 구제에 나서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며 보낸다. 올해는 코로나 이후 가장 큰 퍼레이드가 필자가 사는 지역에서 다시 열리게 됐다.
부림절은 성경 에스더서에 언급되는 절기이다. 에스더의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유대인으로서 페르시아의 왕비로 간택되고 자신의 백성들이 멸절당할 위기 앞에서 초연히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왕에게 간청해 구원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이야기의 단면에 담긴 반유대주의의 역사를 보지 못하고 있다.
안티세미티즘이라고 하는 이 사상은 전 세계의 유대인들을 배척하거나 절멸하려는 운동과 이념을 뜻한다. 이런 흐름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의해 행해진 홀로코스트라는 참혹한 사건을 낳았다. 성경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반유대주의는 항상 그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출애굽기를 보면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의 씨를 말리기 위해서 어린 남자아이들을 죽이라고 명령했다. 뿐만 아니라 앗수르와 바벨론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이고 포로로 끌고 가기도 했다. 에스더서는 그런 가운데 바벨론 포로 시기에 있었던 유대인 말살 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당시 페르시아가 다스리던 지역은 인도에서부터 에티오피아에 이른다. 거의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에 이르는 지역을 광범위하게 차지했으며 다스리던 왕이 아하수에로였다. 그리고 그의 충실한 총리였던 하만은 유대인인 모르드개를 미워하여 그를 죽이고자 그의 종족인 유대인들을 죽이려고 했다. 그때 내려온 칙령은 페르시아 전 지역에 전달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모든 유대인들에게 죽음의 선고가 내려진 것이다.
그 끔찍한 명령을 전해들은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민족을 구하기 위해 금식하고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왕을 만나러 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에스더가 얼마나 지혜로웠는지에 대해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알 수 있다.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언급되거나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너머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어떻게 그 부르심에 반응하는 가를 보여준 것이 에스더서이다.
홀로코스트 때 수 많은 유대인들은 물었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가?'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에서 죽어가던 이들은 계속 되물었을 것이다. '어디에 계신가?' 한 유대인의 간증에서 우리는 그 물음에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아우슈비츠에서 생존 후 종교를 버리고 철학자가 되었다. 그들의 신앙이 자신들을 구원하지 못했다는 분노감에 휩싸여 맹렬히 비난하기 위해서 철학자가 되었던 그의 마음에 충격을 준 것이 바로 부림절의 이야기였다. 그는 이전에 어렸을 때 들었던 부림절의 이야기와 그 자신이 읽었던 에스더서의 부림절의 이야기가 차이가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하나님은 거기 계셨다.' 그는 고통 받는 유대인들 사이에 이미 하나님이 계셨고 그 속에서 역사하시며 그들과 함께 아파하고 고통받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에스더서에서 왜 하나님의 이름이 안 나왔는지를 아냐고 물었다. 하나님은 이미 유대인들 안에 있었기 때문에 언급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부림절에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그의 백성들과 함께 하셨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부림절이 가까워오면 상점들은 커다란 상자들과 물건들을 진열한다. 바로 부림절 코스튬이다. 미국에서는 할로윈 때 코스튬을 입고 가장 행렬이나 축제를 한다. 이스라엘에서는 부림절이 바로 이런 날이다. 그러나 할로윈처럼 귀신 분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양과 옷들을 입는다.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이 부림절에 코스튬을 입는 것과 가장 행렬을 하는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 16세기 중엽부터 유럽에 사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부림절 가장 행렬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런 가장 행렬과 코스튬을 입는 전통 안에서 필자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알게됐다.
반유대주의라는 흐름 속에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감추고 살아야 했다. 자신이 아닌 모습으로 살면서 죽음과 미움과 억압의 시간을 버티고 이겨나가는 것이었다. 내가 아닌 다른 존재로서 살아가는 것이 즐거움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한 것이었다. 마치 에스더가 유대인임을 숨기고 왕비에 간택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 유대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이가 있었다. 모르드개였다. 그런 그에게 닥친 것은 죽음이라는 위협이었고 그 위협을 벗어나게 한 이는 신분을 숨긴 에스더였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숨기는 것이 살길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드러나 죽음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그로 인해서 다시금 민족이 세상 가운데 완전히 드러나게 되고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이스라엘 국가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그 가운데 계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감추어진 모습을 드러나게 하신다. 때론 그것이 아픔과 슬픔을 동반하는 진실의 모습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모든 것들을 하나님은 선한 길로 이끌어 가신다. 에스더서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말이다.
김요셉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