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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는 3월에

이레나 센들러는 1910년 폴란드에서 태어났습니다. 의사였던 그녀의 아버지는 진료 중 티푸스에 걸려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형편이 어려워진 그녀의 가족을 이웃에 살던 유대인들이 돌봐주었습니다. 가장을 잃은 그녀의 가족들에게 돌봄과 사랑을 베풀어준 것입니다. 그녀는 늘 그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1937년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점령한 이후 그녀는 유대인들에게 받은 돌봄과 사랑을 돌려주었습니다.

처음 이레나는 유대인들에게 음식과 피난처를 제공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1940년 왈소 지역에 유대인 게토가 만들어지면서 유대인을 돕는 그녀의 활동도 바뀌었습니다. 당시 바르샤바시 사회복지국에서 근무하고 있던 그녀의 주요 업무는 유대인 게토를 검역해 전염병이 확산하는 것을 막는 것이었습니다. 나치 병사들은 게토를 드나드는 앰뷸런스에 대한 검문검색을 철저히 하지 않았는데 전염병에 걸린 환자를 앰뷸런스로 이송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을 돕는 ‘제고타’라는 지하단체의 일원이었던 그녀는 이 점을 이용해 유대인 아이들을 앰뷸런스에 태워 안전한 장소로 이동시켰습니다. 그러나 1943년 10월 20일 그녀는 나치에 발각되어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재판 후 그녀는 사형 선고를 받았지만 다행히 생명을 건지게 되었고 이후에도 유대인들을 돕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 그녀의 활동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습니다. 폴란드에 들어선 공산정권은 나치 치하에서 폴란드의 공무원으로 활동했다는 이유로 그녀를 투옥했습니다. 1965년 이스라엘의 홀로코스트 희생자 및 영웅 기념관 ‘야드 바셈’에서 그녀를 ‘의로운 시민’으로 선정해 초대했지만 이스라엘을 적성국으로 규정했던 폴란드 정권은 그녀의 출국을 불허했습니다. 다행히 정권이 바뀐 후 1996년 폴란드 정부는 그녀에게 성십자 훈장을 수여했고 이보다 앞서 이스라엘은 그녀를 ‘명예시민’으로 추대했습니다. 자신의 가족에게 베풀어주었던 유대인들의 환대를 잊지 않았던 이레나 센들러는 자신의 생명을 걸고 그 환대에 보답했습니다. 받은 사랑을 잊지 않는 것 그 사랑을 갚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은 누군가가 베풀어준 수많은 돌봄과 환대와 섬김으로 수놓아져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쉽게 그런 돌봄과 환대와 섬김의 손길을 망각하곤 합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는 것들이 우리 자신의 힘과 노력 덕분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다시 꽃이 피는 3월입니다. 올해 피는 꽃들은 지난해 피었다가 졌던 꽃들과 잎들이 썩어서 거름이 된 결과입니다. 썩어짐과 내어줌의 결과로 올해도 꽃이 피는 것입니다. 그렇게 피어난 꽃을 보며 우리는 기뻐하는 것입니다. 새로 피는 꽃들을 바라보며 지난해 이 세상에 피었다가 스러져간 꽃과 잎들을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지금 이곳에 우리가 서있기까지 우리를 위해 애쓰고 힘써주셨던 손길들을 기억하는 것은 어떨까요?

자신의 가족을 도와주었던 유대인들을 기억했던 이레나 센들러와 같이 우리를 섬겨주었던 이들의 기도와 땀방울과 섬김과 사랑을 다시 한 번 기억하는 꽃피는 3월이 되길 소망합니다.

 

기사입력 : 2022.03.06. am 09:04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