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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석 공로장로 - “세계 최대 우리 교회에 일어난 성령의 역사 정말 뜨거웠죠”

세계선교 절정기에 조용기 목사 도와 오대양육대주 동행  
수많은 기적 목격하며 작은 누가처럼 섬길 수 있어 감사  

우리 교회는 세계적인 복음전도자이자 우리 교회 설립자인 조용기 원로목사를 추모하고 그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지난해 10월 영산기념사업회를 설립했다.

조용기 목사의 영적 유산을 이어받은 우리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고 선교와 사회 구원의 사명을 다해야 한다. 우리 교회의 역사와 기록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해 우리 교회 서대문부터 여의도 시절까지 조용기 목사와 함께했던 차일석 공로장로를 만나 우리 교회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믿음의 가정에서 3대째 신앙을 이어온 차일석 장로는 1966년 어머니의 권유로 서대문순복음교회에 출석하게 됐다. 서울특별시 부시장으로서 서울시 개발문제로 많은 고심을 하던 때였다. 차일석 장로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는 조용기 목사의 희망 메시지에 용기를 얻었다. 이후 여의도를 희망의 땅으로 만들겠다는 꿈을 안고 개발을 시작했고 국회의사당 자리를 정하고 그 동쪽 한강변에 종교 부지를 만들었다. 전국에서 각 종교단체들이 입찰을 위해 모여들었지만 기도하며 순복음교회가 올 수 있도록 적극 힘썼고 우리 교회는 1973년 여의도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차일석 공로장로는 조용기 목사를 수행해 오대양육대주를 종횡무진하며 해외성회를 함께했다. 그는 그 시절을 인생의 황금기라고 고백했다. 그에게 들어보는 우리 교회의 역사는 생생한 감동 그 자체였다.


조용기 목사 해외선교에 동참하며 수많은 기적 목격해

차일석 장로는 40대 가장 왕성하던 중년시절 조용기 목사의 해외선교에 동참했다. 1970~1980년대 빌리 그래함, 오랄 로버츠, 피터 와그너, 로버트 슐러 목사 등 세계적인 목회자들과 세계선교에 앞장섰던 조용기 목사를 수행했고 미국과 일본에 방송국을 세워 TV방송선교의 포문을 열었다. “제가 조선호텔 사장을 할 때 여러 귀빈들을 접대하며 국제회의를 위해 세계 각 나라를 방문했는데 뒤돌아보니 이 모든 과정이 조용기 목사님을 수행하기 위한 현장 실습이었어요. 호텔에 목회자가 머물면 우리 교회와 조 목사님을 소개하기 위해 더욱 융숭한 대접을 했어요. 그 기회야말로 기라성 같은 목회자들에게 우리 교회를 알리는 최대의 홍보가 되기 때문이죠.”

그는 로버트 슐러 목사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를 꺼냈다. 당시 세계적 목회자인 로버트 슐러 목사를 우리 교회 부흥회 강사로 모시게 됐다. 집회 마지막 날 슐러 목사님의 딸이 교통사고를 당해 응급상황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미국에 돌아가야 했지만 당장 표를 구할 수 없었다. 차 장로는 “기적을 믿습니까? 비행기표와 여권을 저에게 주시고 저만 믿고 비행장으로 가세요”라고 말했고 항공사에 협조를 구해 슐러 목사 부부가 탑승할 수 있도록 부탁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처럼 탑승권을 구할 수 있었고, 슐러 목사 부부보다 먼저 공항에 도착해서 멋지게 티켓을 쥐고 흔들어 보여주자 기적을 체험한 슐러 목사는 공항에서 통성으로 감사기도를 드렸다.  

1960년대 강대상에서 조용기 목사는 20세기 전반기에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일어난 철학사조의 하나인 실존주의에 대해 말씀을 전하곤 했다. 사물이나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추상적인 본질을 다루는 것인데 당시 문학과 종교, 사상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야스퍼스, 키에르케고르, 샤르트르 등이 있으며 종교가 중에는 폴 틸리히를 손꼽을 수 있다.

“현대 종교인 중에 로버트 슐러, 조용기 목사님이 실존철학을 많이 인용하셨어요. 조용기 목사님은 기독교 철학가들의 말을 설교에 많이 쓰셨죠. 그래서 외국 집회에서도 성령님의 존재를 설교하면서 많은 환자들을 고치셨어요. 실존철학이 발전한 독일에서는 실제로 병이 고침 받았는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 집회에 의사들을 초청해 환자가 정말로 나았는가를 조사한 일도 있었는데 항상 성령님은 우리들과 함께 계셔서 많은 환자가 치유됐죠.”

하나님의 기적은 해외성회에서 더 강권적으로 일어났다. 독일 성회에서는 유방암으로 고통당하던 여성이 깨끗하게 치료받는가 하면 일본에서는 6년 동안 두 다리를 못쓴 채 휠체어를 타야했던 여성이 그 자리에서 고침 받아 간증을 했다. 각 나라 성회마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고 성회마다 5000여 명이 넘는 결신자가 나타나는 등 기적은 이루다 말할 수 없었다.

차일석 장로는 1996년 이스라엘에서 열린 예수탄생 2000년 기념대축제를 끝으로 조용기 목사와 함께한 공식적인 해외선교 사역을 마무리했다.  


민주적 표결로 조용기 목사 1대 당회장 선출

1981년 워싱턴 D.C.에서 전 세계 각국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모여서 레이건 대통령 취임 축하를 위한 행사가 열렸다. 조용기 목사와 차일석 장로가 공식 초청을 받고 참석했다. 주 강사로 말씀을 전한 조용기 목사는 여러 내빈들과 현지인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워싱턴에서 행사를 마치고 하와이에서 하룻밤 자고 가게 됐는데 조용기 목사가 심각한 얘기를 꺼냈다. “한국에 가면 다시 미국에 들어와서 신학을 더 공부할까해요.” 차 장로는 교회를 떠나려는 조용기 목사에게 남아달라고 간청했다. 조용기 목사가 없는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조용기 목사님께서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이끌어오셨는데 미국에 공부하러 가시면 교회는 누가 맡느냐고요, 여의도에 어려운 땅을 만들어놨더니 떠난다고 하시면 어떻게 하냐고 말씀드렸죠. 목사님 손을 잡고 말씀드렸더니 목사님은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자고 하셨어요.”

한국에 돌아와 교회의 체계와 질서를 잡기 위해 당회를 만들었고 당회장을 뽑아야 했다. 이전까지 장로회는 있었지만 장로가 직접 교회의 중요사안을 의결하는 당회는 구성되지 않았었다. 최자실 목사와 조용기 목사 중에 누가 당회장이 돼야 할지 장로들이 모여 투표를 했다. 민주적으로 ‘거수’의 방법에 따라 찬·반 표결로 안건을 의결하기 시작했고 조용기 목사가 1대 당회장이 됐다. 지금은 조용기 목사의 뒤를 이어 이영훈 목사가 2대 당회장으로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영훈 목사님의 아버지인 이경선 장로님이 장로회장을 하실 때 제가 부회장을 했는데 이경선 장로님은 정말 젠틀맨이셨어요. 온화하고 겸손하셨죠. 제가 참 존경하던 분이었습니다. 이영훈 목사님도 아버지를 닮아 따뜻한 성품으로 교회를 잘 이끌고 계시니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참 사랑하시는 것 같습니다.”

성도로서 장로로서 50년이 넘도록 우리 교회의 부흥과 성장에 함께해온 차일석 장로. 그는 바울에게 누가가 있었던 것처럼 작은 누가가 되어 조용기 목사의 선교를 수행하는 선한 사역을 이어왔다. 아흔이 넘은 지금까지 교회를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CGI(국제교회성장연구원) 이사로 헌신하고 있다.

글·이미나 / 사진·김용두 기자

 

기사입력 : 2022.02.27. am 09:43 (입력)
이미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