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제 40대 대통령 로널드 윌슨 레이건(Ronald Wilson Reagan)은 여러 가지 핸디캡을 극복하고 권력의 정상에 오른 인물입니다. 1980년 대선에서 승리했을 때 그의 나이는 69세, 트럼프(70세)나 현 바이든(79세) 대통령 이전에는 미국 역사상 최고령의 대통령 당선자였습니다. 또 전임자들과 달리 아이비리그 명문 대학 출신이 아니었습니다. 전교생 250명 규모의 고향 인근 기독교 학교인 ‘유레카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전임 대통령들에 비해 사회 경력 역시 소박했습니다. 지방 라디오 방송국의 스포츠 캐스터로 시작해 53편의 영화에 출연한 평범한 연기자, 영화배우협회 회장, 제너럴 일렉트릭(GE)사 홍보대변인 등 1966년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당선되기 전까지 내세울 만한 정치 경력은 없었습니다. 따라서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외교, 국방, 행정, 경제 등의 견식을 두루 쌓을 기회 또한 제대로 갖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취임 초 국내외의 시선은 매우 싸늘했습니다. 특히 엘리트를 자처하는 지식인들이나 언론의 폄하가 유독 심했습니다. 혹자는 레이건이 배우 출신임을 빗대 ‘Acting President’, 곧 ‘대통령을 연기하는 사람’ 또는 ‘대통령 직무 대행자’라고 비아냥댈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8년의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퇴임할 때 그에 대한 평가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레이거노믹스’를 통한 경제의 활성화, ‘힘의 외교’를 기반으로 한 냉전의 종식, 자신감의 회복을 통해 ‘미국을 다시 자랑스러운 국가로 만들어 준 위대한 대통령’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특히 레이건은 ‘커뮤니케이션의 달인’(Great Communicator)이었습니다. 우선 그는 대통령으로서의 성패가 국민과의 원활한 소통 여부에 달려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아나운서, 영화배우, 대기업 홍보 책임자를 거치며 쌓아 온 실제적 경험들이 이런 판단의 근거가 됐습니다. 실제로 그는 연설문의 사전 검토와 연습, 편지쓰기, 전화, 현장 방문 등 국민과 소통하고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많은 정성과 노력을 쏟았습니다.
연구자들은 레이건 대통령이 “문제의 핵심을 꿰뚫어 보는 안목이 출중했고, 복잡한 사안도 단순화시켜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고 평가합니다. 그는 항상 겸손한 자세로 듣는 사람의 편에서 생각하려 애썼습니다. 쉬운 말, 짧은 문장으로 행해지는 연설은 그래서 설득력이 컸습니다. 배우 출신답게 온몸으로 전달되는 그의 메시지는 화제와 감동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특히 대통령에서 퇴임한 후인 1994년 11월 5일, 자신이 직접 손으로 쓴 ‘미국민들에게 보낸 고별편지’는 레이건식 커뮤니케이션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이 서신에서 본인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사실을 공개했습니다. 또한 통보를 받고 한동안 ‘개인적인 문제로 여겨 비공개로 할 것인가, 공인으로서 일반에게 공개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했음을 솔직히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이 질병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고통 받고 있는 환자와 가족들에 대한 사회적 이해를 환기시키기 위해 공표키로 결단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편지에서 레이건 대통령은 병의 증세가 더 깊어지기 전에 “국가에 봉사할 수 있는 커다란 영예를 주셨던 국민 여러분께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다”며 진심 어린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전직 대통령과 같은 저명인사가 치매에 걸렸음을 스스로 알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정직과 용기, 국민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체화돼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이를 계기로 레이건 부부는 알츠하이머 연구를 위한 연구소를 세웠습니다. 자신의 질병마저도 국가와 국민에 대한 봉사의 기회로 삼았던 것입니다.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17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두말할 나위 없이 대통령은 대한민국호의 선장입니다. 그의 역량과 자질이 나라의 오늘과 내일을 결정 짓습니다. 주권자인 국민이 냉철한 분별력을 발휘해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이런 면에서 로버트 윌슨이 엮은 책 『결국에는 품성(Character Above All)』은 많은 참고가 됩니다. 10명의 전문가가 미국 역대 대통령 10명을 분석한 이 책의 결론은 대통령의 업적이 ‘결국 품성’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품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어떤 화려한 정책도 신뢰를 잃게 되고, 신뢰를 상실하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고 필자들은 주장합니다. 따라서 “표면의 거품을 걷어내고 후보들의 사람 됨됨이를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 현명한 선택의 요체”라고 제언합니다.
레이건은 대선 TV토론에서 “대통령은 기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어떻게 기도 없이 대통령이라는 두려운 직책을 수행할 수 있겠는가?”라고 분명히 말한 바 있습니다. 주님 앞에 겸손하고, 국민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품성을 지닌 믿음의 사람이었기에 그는 대통령의 막중한 직분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김성동 장로(전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