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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사벽’은 없다


마치다 미쯔구(町田貢) 씨는 일본 외무성의 명실상부한 한국 전문 외교관이었습니다. 그는 1958년 덴리대학 조선어학과 졸업과 동시에 외무성에 들어가 40년 이상을 줄곧 한국 관련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부산 일본총영사관 총영사,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장 등을 지냈고 퇴임 후에는 세종대 교수를 역임했습니다. 특히 1999년과 2000년 한국과 일본에서 거의 동시에 출간된 『일본대사관에서 바라본 한국』은 ‘현장 외교관의 진솔한 한일관계 기록’이라는 평을 받으며 잔잔한 반향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그 가운데 부산 교외의 소규모 봉제공장 방문 소감이 들어 있습니다.

1967년 7월 무더운 초여름 날 그는 한국인 사장의 초대를 받아 그곳을 찾았습니다. 가건물로 지어진 작은 작업장 안에는 스무 살 내외로 보이는 젊은 여성 80여 명이 온몸이 땀에 젖은 채 재봉틀을 밟고 있었습니다. 당시 일본 수출품을 만드는 회사에는 기술지도를 위해 일본인이 주재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곳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치다 씨는 50세 안팎으로 보이는 일본인 기술자에게 “한국인 근로자들의 근무태도를 일본인 근로자들의 경우와 비교해 말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기술과 솜씨는 전혀 차이가 없지만, 한국의 여성들은 120% 이상 일합니다.” 일본인 기술지도사의 이 같은 답을 듣고 그는 화들짝 놀랐다고 고백합니다. 봉제업 공정 경험이 일천한 한국인들이 일본인보다 일을 잘하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후 반세기 가까이 한국의 경제 발전을 지켜보면서 마치다 씨는 선풍기조차 없는 한증막 같은 작업장에서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닦으며 작업에 몰두하던 허름한 옷차림의 그날 여공들의 모습을 종종 떠올리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마치다 씨의 책에 소개된 일본인 기술자의 평가가 55년이 흐른 뒤 현실에 열매 맺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실제로 오랜 기간 일본 경제는 우리에게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이른바 ‘넘사벽’으로 인식돼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이 장벽을 뛰어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저명한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2020년 한국은 23위에 랭크돼 34위에 그친 일본을 추월했습니다. 또 OECD의 발표에 따른 ‘구매력평가(PPP)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 역시 2017년 ‘4만 1001달러’ 대 ‘4만 827달러’를 기록한 이후 3년 연속 일본을 앞서고 있습니다. 물론 24명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기초과학 경쟁력’, 대외순자산 1위의 ‘총체적 국부(國富)’에서는 일본과 아직 비교할 수 없지만 디지털 시대로 전환되는 시점부터 시작된 한국의 추격은 무서울 정도로 맹렬합니다.

그러면 이 같은 경이로운 약진의 바탕은 무엇일까요? 새뮤얼 헌팅턴의 주장을 원용하면 ‘문화’가 해답입니다. 즉 미국의 대표적 정치학자 헌팅턴은 공편(共編)한 책 『문화가 중요하다』의 서문에서 자신의 논지를 입증하는 실례로 한국과 아프리카 가나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1960년대 초반 두 나라의 경제 상황은 매우 흡사했습니다. 국민 1인당 GNP 수준, 농산품, 공산품, 서비스 산업의 경제 점유율, 다른 나라들로부터 상당한 규모의 원조를 받고 있다는 점이 모두 유사했습니다. 하지만 30년 뒤인 1990년대 초에 이르러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한국은 세계 14위의 경제력을 가진 산업 강국으로 성장한 데 비해 가나는 여전히 1인당 GNP 수준이 한국의 15분의 1에 불과한 가난한 나라로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헌팅턴은 이처럼 현격한 격차를 가져 온 결정적 요인을 ‘문화’라고 주장합니다. 마치다 씨의 책에 소개된 여공들처럼 한국인들에게는 검약, 근면, 교육, 극기 정신 등의 가치체계가 작동하고 있었던 반면 가나에는 이 같은 기풍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대한민국의 성장은 현대사의 기적입니다. 피식민의 수모와 전쟁의 폐허를 딛고 불과 반세기 만에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우뚝 섰습니다. 약소국의 설움, 체질화된 패배 의식을 분연히 떨쳐내고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는 대각성이 국가적 에너지로 활화산처럼 분출된 결과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의식혁명에 기독교는 지대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1960년대부터 본격화된 경제 성장과 한국교회의 비약적 부흥의 시기가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는 점이 이를 입증합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생명의 복음, 부활의 능력이 잠자던 이 민족을 깨웠던 것입니다.

팬데믹 위기 가운데 새해를 맞았습니다. 벅찬 설렘과 희망찬 포부 대신 절박한 긴장감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명의 성장은 계속돼 온 ‘도전’에 성공적으로 ‘응전’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입니다. 한동안 코로나와의 힘겨운 싸움은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폐허를 딛고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저력이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축적된 대한민국의 힘을 다시 한 번 재결집해 반전의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교회는 밑거름의 역할을 겸손히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위기는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입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면 결코 우리에게 ‘넘사벽’은 없습니다.

김성동 장로(전 국회의원)

 

기사입력 : 2022.01.16. am 09:55 (입력)
김성동 장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