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과 실라가 제2차 선교여행을 떠나 제1차 선교여행 지역인 오늘날 터키 중부에 위치한 더베, 루스드라, 이고니온, 비시디아 안디옥 등지를 차례로 방문하며 믿는 자들을 굳건하게 하고 복음을 전하자 큰 부흥이 일어났다. 그들은 계속해서 ‘아시아’(터키 서부)에서 전도하려 했지만 성령께서 이를 막으셨다. 그래서 그들은 소아시아 북동쪽의 비두니아로 가려고 했지만 다시 “예수의 영(= 성령)이 허락하지 않으셨다”(행 16:6~7). 그래서 소아시아 서쪽 항구 도시인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거기에서 밤에 환상을 통해 마게도냐 사람이 나타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행 16:9)고 말하는 것을 듣고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깨닫고 바다 건너 유럽의 관문인 그리스(헬라)에 첫발을 내딛게 된다.

바울 선교팀은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사모드라게 섬을 거쳐 네압볼리 항구에 도착해서 육로로 빌립보에 이르게 된다. ‘빌립보’는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 필립 2세(주전 356~336 재위)의 이름을 따서 건설한 헬라 도시였는데, 로마가 주전 42년 전쟁에서 승리한 후로 로마의 식민지로 재건되었다. 누가는 빌립보를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라고 소개하는데 그리스는 북부 ‘마게도냐’와 남부 ‘아가야’로 이루어져 있었고, 빌립보는 마게도냐의 첫 번째 ‘성’(도시)이라는 것이다.    

사도 바울의 선교 전략은 낯선 도시에 가면 유대인들의 회당에 먼저 가서 복음을 전한 후, 유대인들의 박해가 시작되면 회당을 나와서 회심자들과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빌립보에는 회당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안식일이 되자 바울 일행은 회당이 없는 지역에 회당 대신 있던 “기도할 곳”(원문: ‘기도처’)을 찾았다. 그곳에는 여자들만 모여 있었다. 유대인 성인 남자 열 명만 있으면 회당 하나를 세울 수 있던 때에 빌립보에 회당이 없었다는 것은 그만큼 유대인 이주민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고 그런 곳에 기도처가 있었다면 주로 여성들만 모였으리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바울이 강가의 기도처에 모인 여성들에게 말씀을 전했을 때 주님께서 그 중 루디아라는 “하나님을 섬기는”(= 이방인 유대교 신자) 여성의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셨다(행 16:14). 루디아는 두아디라 사람으로 부유한 실업인(자색 옷감 장사)이었다. 그녀는 주님을 영접하자마자 “그와 그 집이 다 침례를” 받았다. 구원받은 것이 너무나도 기쁘고 감사해서 그녀는 바울 일행이 자기 집에서 머물도록 간청해서 그들을 정성껏 섬겼다. 이렇게 해서 루디아 가정은 바울의 빌립보 선교, 더 나아가 유럽 선교의 첫 열매가 되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바울이 말씀을 전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셨다”는 표현이다. 이것은 복음을 전하고, 전도하고, 선교하는 우리의 노력과 헌신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을 듣는 자들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그 말씀을 받아들이도록 만드셔야 불신자가 복음을 믿고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끝으로, 바울의 아시아 선교 계획을 성령께서 막으시고 유럽 땅인 빌립보로 인도하신 것을 가리켜 흔히 ‘바울이 유럽을 향해 올라탄 배에 눈부신 서구 물질문명도 함께 갔다’라고 말하는 것은 사도행전의 내용에 어긋난 해석이다. 왜냐하면 바울의 제2차 선교여행의 선교지는 유럽이었지만, 곧이어 진행된 제3차 선교여행의 선교지는 아시아의 주도(州都)인 에베소였기 때문이다. 유럽과 마찬가지로 아시아도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의 대상이었다.

김호성 부목사(목회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