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화 과정을 거친 구약 39권 …
예수님의 말씀과 사도성으로 권위를 인정받은 신약 27권
3. 성경의 권위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는 디모데후서 3장 16절은 기독교인들에게 잘 알려진 말씀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모든 성경'은 신약과 구약을 포함한 신·구약 성경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디모데후서는 주후 66~67년경에 쓰였는데 이때는 아직 사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를 비롯한 신약성경 대부분의 책들이 완성되지 않았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디모데후서 자체도 디모데에게 보내는 서신으로 정경화를 거쳐 성경의 한 부분으로 들어가지 않은 상태였기에 딤후 3장 16절의 '모든 성경'을 신·구약 성경 모두로 이해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구약성경만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됐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1) 구약성경의 권위
초대교회는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서 볼 수 있듯이 모든 구약 39권을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 이것은 유대 전통을 교회가 그대로 받아들인 것인데 사도들은 이미 정경화 과정이 끝난 구약 39권을 논쟁의 여지없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 교회 안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2) 신약성경의 권위
구약성경과 달리 아직 정경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바울의 서신서를 비롯한 공동서신과 복음서에 대한 권위를 인정할 기준이 필요했다. 신약성경의 권위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예수님의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과 가르침은 다른 모든 성경의 말씀을 능가한다. 예를 들어 구약 39권 중 요나서의 정경성(Canonicity)에 대해 의구심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왜냐하면 요나서 자체는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적이었던 앗시리아(앗수르)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었고, 내용적인 면에서도 너무 신화적인 요소가 많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마 16:4)고 요나를 직접 언급하신 사건으로 요나서의 정경성 여부는 일단락되었다.
예수님의 말씀은 사도들의 말과 기록보다 훨씬 권위를 가지며 구약의 기록보다 우선한다.
둘째, 사도성이다.
사도성은 신약성경을 누가 기록했느냐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신약성경이 된 베드로전·후서를 예수님의 제자였던 베드로가 쓰지 않았고 다른 사람이 썼다면 베드로전·후서는 성경으로서 권위를 인정받기 힘들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형제였던 야고보가 기록한 야고보서나 바울의 편지글인 바울 서신서도 마찬가지이다.
4. 성경의 의미
성경은 십계명과 같이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말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열왕기서나 역대서와 같이 이스라엘의 역사적인 기록도 있다. 신약성경도 마찬가지이다. 산상수훈과 같이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한 것도 있지만 사도행전과 같이 베드로와 바울을 중심으로 한 사도들의 사역과 초기 기독교의 선교 역사가 포함되어 있다.
1) 교부들의 관점
교부들은 성경의 의미를 몇 가지로 나눠서 이해했다. 알렉산드라 학파를 대표하는 오리겐(Origen, 185~254)은 성경의 세 가지 의미에 집중했다. 그는 첫째, 성경의 가장 근본적인 물질적 의미 즉 문자적, 문법적, 주석적(commentary) 의미를 강조했다. 그래서 성경을 해석할 때 성경의 문자적인 의미와 문법적인 의미를 밝히고자 주력했고, 유대 전통과 사도들의 해석인 주석적인 의미에도 소홀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둘째, 정신적(도덕적) 의미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역사뿐만 아니라 인간이 세상에 살면서 지켜야 할 윤리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오리겐은 이것을 정신적(도덕적) 의미로 분류했다.
셋째, 영적 혹은 우화적(allegorical) 의미이다. 성경의 본문을 문자적인 의미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 영적인 의미로 해석하려고 하는 것은 교부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적인 경향이었다. 교부신학의 완성자라고 할 수 있는 어거스틴(St. Augustine, 354~430)은 성경의 의미를 좀 더 확장시켜 역사적 의미, 유추(類推) 혹은 유비(類比, Analogy)적인 의미와 인과적인 의미로 세분화했다.
유비적인 관계는 인과관계가 불분명하거나 역사적인 의미로 이해가 부족할 때 추론적인 의미를 부가해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세로 넘어가면서 이런 성경의 지나친 의미적 해석은 성경의 본질을 해치게 됐다.
2) 종교개혁자들의 관점
종교개혁자들은 중세 교회의 무분별한 성경의 우화적 의미나 해석을 비판하고 문자적 이해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종교개혁을 이끌었던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성경은 그 자체로서 분명하며, 자기 자신의 해석자이기 때문에 로마 가톨릭교회와 전통을 통해 신뢰를 재확인하거나 설명되고 해석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종교개혁 이후 로마 가톨릭교회와 맺은 일치신조(the Formula of Concord, 1577)는 오직 성경만이 교리의 심판자(index), 규범(norma), 척도(regula)와 시금석(Lydius lapis)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에 반해, 전통은 성경과 결코 동등한 것이 아니며 성경에 종속된다. 교회의 전통은 오직 성경과 모순되지 않고 일치하는 범위 안에서만 유효하다고 밝히고 있다.
5. 성경의 영감설(Inspiration)
성서론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주제 중 하나는 영감설이다. 영감설은 성경 기자들과 성령의 관계성에 관한 것이다.
1) 기계적 영감설
기계적 영감설은 성경의 기자들은 성령이 불러주는 대로 성경을 기록한 '성령의 손', '필기도구'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이 말이 그럴싸하게 들릴 수 있으나 이것은 큰 오류를 가지고 있다. 즉 성경의 기자들은 성경의 내용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고 기록했고 성령과의 영적인 이해와 교감이 없이 단순히 받아쓰기하듯 기록했다는 뜻이다.
2) 동력적 부분 영감설
기계적 영감설이 성경의 기록자로서의 인간의 역할을 축소한 것이라면, 동력적 부분 영감설은 성령의 역할을 극도로 제한한 것이다. 동력적 부분 영감설은 성경의 기록자들이 성령의 직접적인 영감을 받아 성경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조명을 받아 인간의 자유로운 의지로 성경을 기록했다는 주장이다. 그 결과 로마서는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이 아니라 바울의 책이 되는 것이다.
3) 유기적 축자적 영감설
오순절 교단을 비롯한 복음주의적인 교단에서 받아들이고 있는 성경의 영감설이다. 성령께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모든 단어를 불러 적게 하신 것이 아니라 성경의 기록자들이 분명하게 무슨 뜻인지 알고 의지적으로 기록했으며, 성령께서 그들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어휘, 표현, 단어를 선택하도록 인도하셨고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막아 주셨다고 믿는 것이 유기적 축자적 영감설이다.
이상윤 목사(홍콩순복음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