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명의 교황이 있게 된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정리한 것은 하인리히 3세 황제였다. 그는 세 명의 교황을 모두 축출하고 클레멘트 2세를 새 교황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클레멘트 2세가 1년 만에 사망하고 그 후임 베네딕트 9세마저 곧바로 죽자 황제는 자기 사촌이었던 레오 9세를 교황에 임명했다. 레오 9세는 당시 들불처럼 번지던 클루니수도원 중심의 신앙 회복 운동에 큰 영향을 받아 교회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던 인물이었다. 그는 교황청의 행정을 개선하고 더 나아가 교황 선출 원칙을 확립함으로써 로마의 귀족이나 황제가 교황 선출에 개입할 여지를 없앴다.

레오 9세는 특별히 동방 비잔틴 제국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케룰라리우스와 적대관계에 있었다. 이는 개인적인 차원의 감정이라기보다 역사적 상황에서 야기된 일이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제국의 수도를 콘스탄티노플로 이전하자(330년) 로마는 여러 가지 면에서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두 도시의 대주교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경쟁의식이 생겼다.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는 로마의 대주교가 모든 교회의 머리(=교황)가 되려는 행위가 매우 불편했고 반대로 로마의 대주교는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가 자신과 동등한 위치가 되려는 것을 매우 못마땅해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케룰라리우스는 서방교회의 예식에 대해 맹렬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서방교회가 성찬 예식에서 효모를 넣지 않은 무교병을 사용하는 것, 토요일에 금식하는 것, 목매 죽인 짐승들의 고기를 먹는 것에 대해 이단적이라고 비난했다. 그뿐만 아니라 서방교회의 성직자 결혼 금지 규정 역시 자연법칙을 위배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케룰라리우스는 이런 내용의 선언문을 레오 9세에게 보내면서 콘스탄티노플 내에 있는 라틴 교회들에게 헬라식 예배를 강요하면서 불복하면 폐쇄해버렸다. 레오 9세는 로마교회의 절대적 우위를 재차 강조하며 교황으로서 이러한 조치에 강력히 항의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러한 두 대주교 사이의 갈등은 동·서 교회 전체의 대립으로 확대되었다.

마침 이때 노르만인들이 남부 이태리를 침공했다. 당시 남부 이태리는 동방 비잔틴 제국의 영역이었고 전략상 요충지였기에 황제는 서방 측과 공동 대처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케룰라리우스는 황제의 뜻에 따라 레오 9세에게 편지를 보냈고 그는 세 명의 사절을 콘스탄티노플로 파견했다. 그러나 로마 교회의 사절단이 도착하는 사이에 노르만인들의 침략이 평정되면서 동·서방교회의 분열에 대한 황제의 관심이 식어버렸다. 이를 눈치챈 케룰라리우스는 로마 교회 사절단에게 강경한 태도로 교리와 예식에 대한 변화를 강요했고 레오 9세의 사절단은 갑자기 바뀐 콘스탄티노플 대주교의 태도에 분노했다.

설상가상으로 갑작스럽게 레오 9세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결국 로마 교회의 사절단은 1054년 7월 16일 성 소피아 성당에 들어가 제단에다 저주문을 올려놓고 콘스탄티노플을 떠나 버렸다. 저주문에는 "이들(=동방 주교들) 모두는 성직 매매자들, 발레리안주의자들, 아리우스주의자들, 도나투스파들, 니콜라당, 세베리안주의자들, 성령대항자들, 마니교도, 나사렛당과 기타 모든 이단자들과 함께 저주를 받을지어다. 만일 회개하지 않으면 악마와 그의 천사들과 함께 저주 받을지어다. 아멘, 아멘, 아멘!"이라고 씌어있었다. 4일 후(1054년 7월 20일) 같은 장소에서 케룰라리우스는 로마교황과 그의 추종자들을 파문했다. 로마교회는 기독교가 아니고 정통 기독교인 동방교회와는 상관이 없다고 천명했다. 이로써 세르디카공의회(343년) 이후 기독교 역사상 두 번째 동·서방 교회의 분열이 공식화되었다.

김형건 목사(동작대교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