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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古典)에서 길을 찾다] 기독교 고전 리뷰를 위한 프롤로그

칫솔에 인공지능이 탑재되어 있어서 프로페셔널한 양치질이 가능해진 요즘에 ‘고전 읽기’라니. 교회도 메타버스에 탑승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때다.

NFT(디지털 자산)를 어찌 다루어야 할까 고민 중인데 기독교 고전을 읽자고 하면 시대적 역행이 아닌가 댓글이 달릴 수도 있겠다.

책읽기는 백 번 천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평생을 병과 위협에 시달렸음에도 책을 놓지 않았던 조선 22대 왕 정조. 죄인으로 몰려 유배된 곳에서도 정약용은 복사뼈에 구멍이 날 정도로 독서에 매달렸다. 파스칼은 견딜 수 없는 치통과 뇌 장애의 고통 가운데에서도 책을 놓지 않았다. 애플을 정상으로 올려놓은 스티브 잡스는 고전 독서에 열광적인 사람이었다. 청나라 4대 황제인 강희제는 선교사들이 건네준 기독교 고전을 읽는 데에 피를 토할 정도로 열심이었다고 한다.

고전(古典)에 현타가 올 수도 있다. 오래된 책인 만큼 읽기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 때문이다. 하지만 고전은 시공간의 엄격한 테스트를 통과한 책이다. 오랜 시간동안 유익함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검증되어 명작이 되었다. 세월이 지난 유산일수록 값어치가 상승하듯 고전 명작은 읽을수록 천혜향처럼 향이 짙어진다. 그 향기에 취해 스펄전 목사가 100번 이상 읽은 고전이 『천로역정』이다. 천로역정을 읽고 길선주 목사는 회심했다.

서양철학사는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 기독교 서적도 사실 성경의 각주이다. 그럼에도 읽어야 하는 것은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피카소의 작품은 볼 때마다 왜 좋은지 모를 수 있다. 그러나 자꾸 보게 되면 알게 된다. 용기를 내어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읽고 보면 더 잘 보인다.

우리는 고전을 통해 얻은 지혜로 현재를 읽을 수 있다. 또한 받은 감동으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 그 매개체로 서울대 김난도 교수는 『트렌드 코리아 2022』에서 ‘내러티브’를 꼽고 있다. 스토링텔링은 이야기의 전달이고, 내러티브는 ‘해석적 소통’이다. 현재 우리에게 닥친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해석적 소통이 필요하다. 600년 전에 쓰여진 고전을 부모와 자녀가 같이 읽어보자. 갈등으로 생긴 세대간 틈을 해석적 소통을 통해 메꾸어 보자. 그것이 기독교 고전 리뷰를 하고자 하는 목적이다.

앨빈 토플러가 제3의 물결을 쓰기 위해 참고한 서적이 534권이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 한 권 책을 쓰기 위해 작은 도서관 분량의 책을 읽었다고 한다. 기독교 고전 명작 7권을 먼저 읽고 한 권씩 소개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지루한 책 리뷰는 잊어버리자.

천혜향의 부드러운 껍질을 까듯 이제 고전의 향기 속으로 들어가 책린이가 되어보자. “지혜가 너를 선한 자의 길로 행하게 하며 또 의인의 길을 지키게 하리니”(잠 2:20).

임훈 목사

 

기사입력 : 2021.11.14. am 08:26 (입력)
임훈 목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