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의 타락과 부패<2> - 중세판 부관참시

교황 요한 8세가 죽은 뒤 약 9년 후 포르모소가 제111대 교황의 자리에 올랐다. 사실 그는 872년경 요한 8세와 함께 교황 후보로 강력히 거론되던 인물이었다. 이미 864년 포르토(현재 포르투갈의 북부 도시)의 주교급 추기경으로 서임된 포르모소는 요한 8세와 강력한 경쟁 구도를 이루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요한 8세가 교황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고 이후 교황은 갖은 혐의를 씌워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포르모소를 추방해버렸다. 그러나 포르모소는 요한 8세가 사망한 후 다시 로마로 입성할 수 있었고 결국 891년 10월 6일 콘클라베에서 만장일치로 교황에 선출되었다.

포르모소는 교황으로 선출된 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스폴레토 가문의 귀도 3세와 심한 갈등을 빚었다. 황제는 자신의 아들 람베르토 2세를 자신과 더불어 공동 황제로 선포한 후 포르모소에게 교회가 제위를 인정하도록 강요했는데 포르모소는 이를 거부했던 것이다. 결국 포르모소는 황제와 그의 아들을 견제하기 위해 동프랑크 왕국의 군주였던 케른텐의 아르눌프에게 군사적 도움을 요청했고 결국 894년 귀도 3세를 제거한 후 895년에는 람베르토 2세를 로마에서 몰아낼 수 있었다.

얼마 못 가서 중풍과 뇌졸중 등으로 아르눌프가 쓰러지고 896년 포르모소마저 선종하자 이탈리아는 다시 람베르토와 그의 어머니의 영향력 아래로 들어갔다. 요한 8세가 죽은 뒤 복권한 바 있던 포르모소가 자신의 죽음 뒤 재기한 람베르토를 하늘에서 보았다면 어떤 심정이었을까? 권좌를 되찾은 람베르토는 자신을 위기로 몰아간 포르모소에게 보복을 가하고자 하였고 이는 교회 역사상 가장 끔찍한 재판으로 이어졌다.

포르모소의 뒤를 이어 교황이 된 보니파시오 6세가 재위 15일 만에 통풍에 걸려 죽고 뒤를 이어 교황이 된 스테파노 6세는 람베르토의 영향력 아래에서 897년 교회회의를 소집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공의회는 이미 죽은 전임 교황 포르모소를 재판하기 위한 교회회의였기에 훗날 ‘시체공의회’라고 불리게 되었다.

스테파노 6세는 포르모소의 시신을 무덤에서 꺼내 교황의 옷을 입히고 피고인석에 앉혔다. 생전에 교황 요한 8세와 갈등을 빚음으로 그에게 씌워졌던 모든 혐의가 다시 제기되었고 결국 사후임에도 교황의 자격이 박탈되었다. 포르모소 재임 시절 행했던 모든 정책과 교령이 무효화 되었으며 그가 베풀었던 서품도 모두 무효처리 되었다. 교황의 제의를 벗긴 후 평신도의 옷을 입혔으며 생전에 축성할 때 사용하던 세 개의 손가락을 잘라버린 후(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성한 거룩한 손가락이었기에) 테베레 강에 버려졌다.

사실상 이 사건은 포르모소에 대한 람베르토의 복수심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교황 스테파노 6세가 황제의 부당한 요구에 무릎 꿇은 대가는 비참했다. 자신이 벌인 이 일로 인해 교황 스스로도 파멸할 수밖에 없었다. 스테파노 6세는 포르모소가 행한 모든 서품을 모두 무효로 선언했기 때문에 그에게 서품 받은 자신의 성직도 무효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스테파노 6세는 그 해 여름 강제로 감옥에 투옥된 다음 교살되었다. 그는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 10:28)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했어야 했다.

김형건 목사(동작대교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