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박지혜씨 이름 앞에는 ‘천재’라는 수식어가 따라붙곤 합니다. 그녀의 천재성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연습을 통해 일궈낸 것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고토 미도리의 연주를 들으면서 “나도 이런 소리를 내고 싶다”라는 꿈을 품었던 그녀는 하루에 열여섯 시간씩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습니다. 그녀가 이렇게 노력했던 이유는 자신은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되는 것을 자신의 목표로 정한 그녀는 계속해서 자신을 다그쳤습니다. 그러던 중에 독일 정부로부터 국보급 바이올린 ‘페트루스 과르네리’를 12년간 무상 대여받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페트루스 과르네리는 1735년 만들어진 명품 바이올린으로 10억원이 넘는 고가의 악기입니다. 독일 정부에서 명품 바이올린을 그녀에게 무상 대여했다는 것은 그녀의 출중한 연주 실력을 인정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바이올린을 대여 받은 즈음 그녀는 깊은 우울증에 빠지게 됩니다. 각종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연주에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원하는 목표를 이루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고 좌절한 것입니다. 결국 무상으로 대여 받은 최고의 악기가 눈앞에 있어도 그것을 연주할 수가 없었습니다. 의사는 그녀가 죽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런 그녀를 걱정했던 그녀의 어머니는 음반을 내자고 설득했습니다. 어쩌면 그 음반이 그녀의 마지막 음반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음반의 제목은 <홀리 로드>였습니다. 수록곡은 그녀가 우울증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낼 때 한줄기 위로와 희망을 주었던 찬송가였습니다. 비록 자신은 꿈을 이루지 못하고 떠날지라도 그 연주를 듣는 누군가에게는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것이었습니다. 이후 그녀는 보통의 바이올리니스트라면 거절했을 장소들에서 연주회를 가졌습니다. 병원, 교도소, 소록도의 한센인 마을 등 그녀는 치유의 음악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 연주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거듭되는 연주회를 통해 그녀 역시 치유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와 같은 연주회에서는 그 누구와 경쟁하지 않아도 되었고, 누군가의 평가를 받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위한 위로의 연주가 결국은 자신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연주가 되어 돌아온 것입니다. 연주 활동을 통해 치유함을 받은 그녀의 목표 역시 달라졌습니다.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가 아니라 세계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되는 것이 목표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온갖 경쟁으로 가득합니다. 더 갖기 위해, 더 높이 오르기 위해 우리는 누군가와 경쟁합니다. 그러나 그런 모든 활동은 우리에게 진정한 평안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더 많은 걱정과 더 많은 근심을 가져다줄 뿐입니다. 이제 우리는 더 갖기 위해, 더 높이 오르기 위한 경쟁의 삶이 아니라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것이 나를 살리는 길이고 다른 이들을 살리는 길입니다. 나의 삶을 치유하고 다른 이들의 삶을 치유하는 길입니다. 가을이 오는 9월, 우리 모두 그런 삶을 추구함으로 이 사회가 살고, 나라가 살고, 온 세계가 다시 한 번 새로워지길 소망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