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에 기록된 가장 보편적 사랑의 모습 ‘아가페’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헬라어에는 여러 종류의 ‘사랑’ 혹은 ‘사랑하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가 존재한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들은 필레오(phileo), 스테르고(stergo), 에라오(erao), 아가파오(agapao) 등이다.

필레오(phileo)는 사랑과 애정의 표현에 가장 널리 사용되는 단어로서 주로 가족이든 가족이 아니든 서로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의 피차간의 ‘끌림’을 나타낸다. 필레오는 지인 사이에 느끼는 애정이나 친분을 표현하며 서로가 느끼는 잘 어울리고 잘 소통하는 것에 대한 개념이다. 이는 상호 교감에 기초한 사랑이며 관심, 염려, 환대 등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애착 등의 뜻을 함축하고 있다. 필레오와 관련된 개념들은 신앙적 의미를 지니지는 않는다.

스테르고(stergo)는 필레오 보다 드물게 나타나는데 본래 의미는 ‘헌신’이다. 이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느끼는 책임감이나 소속감, 유대감 등을 의미한다. 즉 스테르고는 자기 공동체에게만 적용되는 제한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특히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을 표현하는 말로 주로 사용됐으며 통치자에 대한 백성들의 사랑, 인간에 대한 수호신의 사랑, 주인에 대한 개들의 사랑을 묘사하는 데도 사용됐다. 남편과 아내의 사랑을 나타내는 말로는 별로 사용되지 않았다. 합성어 형태로 기록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신약성경에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단어이기도 하다(참조. 롬 1:31; 딤후 3:3 롬 12:10). 초대 기독교 문서 중에는 이 단어가 사용된 문서도 존재한다.

헬라어 동사 ‘에라오’(erao)와 명사 ‘에로스’(eros)는 남녀 간의 사랑을 나타내며 갈망, 열망, 욕구 등의 의미를 함축한다. 사실 에로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사랑의 신의 이름과 같다. 에로스는 육체적인 욕구인 식욕, 성욕 등을 만족시키려는 육체적인 감정이나 충동을 의미한다. 에로스의 사랑은 자기의 만족을 추구하는 자기중심적인 사랑이다. 특이한 점은 이 단어가 신약성경에는 한 번도 쓰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성령의 열매 중 첫 번째로 등장하는 ‘사랑’에 사용된 헬라어 명사는 ‘아가페’(agape)이다. 이는 ‘사랑하다’라는 동사 ‘아가파오’(agapao)에서 유래하였다. 성경 이외의 문헌에서 명사형 ‘아가페’가 사용된 것은 단 1회 뿐이며 신약성경에서는 116회 나타난다. 동사형 ‘아가파오’는 신약성경에 143회나 등장한다. 특히 요한 문서인 요한복음(37회) 요한일서~삼서(31회) 요한계시록(4회)에 자주 등장한다. 아마도 ‘아가페’는 헬라인들이 신비적인 것으로 이해했던 사랑의 개념인 ‘에로스’와 상반된 의미로 신약성경에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는 ‘사랑·애정·호의·자비심’이란 의미로 사용됐다.

아가페는 인간의 사랑에 대한 표현에 사용됐으며(갈 5:22; 롬 15:30; 골 1:8; 살후 2:10; 엡 1:15) 하나님을 향한 사랑(눅 11:42; 요 5:42; 요일 2:15)에도 차용됐다. 또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사랑 즉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요일 4:9; 요일 4:16; 롬 5:8)이나 하나님과 그리스도와의 관계(요 15:10; 요 17:26; 골 1:13)에 대해서도 ‘아가페’가 사용됐다. 기억해야 할 것은 ‘아가페’가 하나님의 사랑만을 표현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아가페는 ‘한 개인이 어떤 대상의 가치를 인식하고 이해함으로써 그 대상을 존중하며, 나아가 존경하고 경이롭게 여기며 진심으로 중히 여기는 사랑’을 의미한다.

김에녹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