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땅의 일, 하늘의 일

사람이 거듭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이며 오직 성령의 역사다. 거듭남은 오중복음의 첫 자리에 위치하며 사람은 거듭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에 속한 새사람이 된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요 3:3). 달리 말하면 거듭나지 않은 사람의 시야에는 하나님 나라가 없고 오직 세상 나라만 들어차 있다. 그래서 이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사는 것이다.

요한복음 3장을 보면 예수님은 유대교 지도자 니고데모와 거듭남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셨다. 거듭남을 이해 못 한 니고데모가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라고 반문하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요 3:12). 여기서 땅의 일은 니고데모가 믿지 못하는 거듭남을 말한다. 거듭남은 이 땅에서 요구되는 일이기에 그리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거듭남이라는 땅의 일만 아니라 ‘하늘의 일’도 말씀하셨다.

‘하늘의 일’이란 무엇일까? 하늘의 영광에 이르는 일, 곧 예수님이 인류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고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시기 위해 감당하신 일을 말한다. 그것은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 고난의 길을 뜻하는데, 이는 거듭난 사람에게도 주어진 길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거듭남이라는 땅의 일에 머물러 있지 않기를 원하신다. 인생의 염려, 재물의 유혹, 세상의 향락에 믿음이 흔들려 ‘내가 거듭난 게 맞나? 나는 구원받았나?’ 하는 의문을 품고 제자리걸음만 하는 신앙에 머물러 있는 것을 너무도 안타까워하신다.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로 거듭남이라는 놀라운 축복을 받았다면 하늘의 일을 위해 삶의 방향을 완전히 틀어야 한다. 인류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해 예수님이 걸어가신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를 함께한 제자들에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2. 제자들의 실패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있은 다음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과 부활에 대해 제자들에게 처음 말씀하셨다(마 16장). 이때 베드로의 반응이 가관이었다. 한글성경에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했다고 번역되어 있는데 이는 점잖은 표현이다. ‘항변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에피티마오’인데 예수님이 귀신이나 병마를 쫓아내실 때 쓰인 동사이며, 영어 번역을 따르면 ‘꾸짖다’가 된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귀신 들려 제정신이 아니라는 듯이 예수님을 꾸짖었다.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된다면서 말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걱정됐던 것일까? 물론 아니다. 자기 인생이 걱정이었을 뿐이다.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삶의 이유와 목적이 아니라 인생 역전의 수단이었다. 예수님을 따른 베드로의 본심은 따로 있었다.

고난주간 직전 예수님이 십자가 고난과 부활에 대해 세 번째 말씀하셨을 때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을 찾아왔다(마 20장). 그녀는 주님의 나라가 세워지면 자기 두 아들이 각각 한 자리씩 차지하게 해 달라고 청탁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들은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르는 결단과 용기를 보여 줬었다. 그러나 그들의 어머니가 예수님을 찾아와 이런 청탁을 한 것을 보면 그들이 예수님이 하시는 일에 전적으로 헌신한 것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3년 반 동안 예수님 곁을 지켜오면서 어부로 살 때는 갖지 않았을 권력에 대한 탐욕을 키워 왔던 것이다. 예수님을 따를 때 그들의 마음은 콩밭에 가 있었다.

3. 앞으로 가야 할 길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이후에는 예수님을 따라가야 한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이 가신 길을 뒤따라야 한다. 구원의 길이 하나인데 구원받고 난 후의 길이 여러 개일 수 없다. 길은 하나다. 순교자 짐 엘리엇은 말했다.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하여 영원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 사람은 결코 바보가 아니다.” 거듭난 이후의 삶은 예수님을 따라가기 위해 비우고 버리고 내려놓는 삶이다.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신자가 되었다면 예수님을 따라감으로써 제자가 되어야 한다.

오정섭 목사(국제신학연구원 신학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