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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을 써 주세요

3년 전 소천하신 제 장인은 유품으로 『영구(嶺丘)의 남성(南星)을 찾아서:피난일기』라고 이름 붙인 한 권의 책을 남기셨습니다. 구름 한 점 없이 아침부터 무더웠던 1950년 8월 8일, 북한군의 점령하에 있던 서울을 탈출해 9월 27일 고향 대구에 도착하기까지의 피난 노정을 갱지 위에 일일이 육필로 기록한 것입니다. 21세의 대학생이 한강을 건너 당진, 공주, 추풍령 등 전장을 뚫고 영남 고향 집에 이르기까지의 50일의 과정은 실로 생과 사의 갈림길을 수없이 넘나들었던 위기의 연속이었습니다.

일기 속에는 인기척 없던 민가에서 주인을 찾는다고 무심코 연 방문 안에 사체들이 가득했던 경악스러운 순간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전속력으로 달려오던 북한군의 오토바이를 피해 길옆으로 몸을 던지자마자 갑자기 나타난 전투기가 조금 전 서 있던 바로 그 자리에 기총소사를 퍼붓는 오싹했던 공습 광경도 들어있습니다.

폐허가 된 도시, 인적 끊긴 촌락, 와이셔츠와 소지품들을 팔아 피난 비용을 마련하고, 산기슭 외딴 초가집 앞마당에 겨우 하룻밤 잠자리를 얻어 풍찬노숙 했던 일화들은 마치 삽화들처럼 전란 중의 사회상을 꾸밈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고향 집에 도착한 후 장인께서는 국군에 자원입대를 신청했습니다. 그리고 입영을 하루 앞둔 11월 7일 깊은 밤 ‘피난일기’의 ‘후기(後記)’를 마무리했습니다. 치열했던 당시 전황을 고려한다면 군 입대는 목숨을 나라에 맡기는 결단이었기에 입영 전야 완결된 그 마지막 페이지는 유서를 쓰는 심정으로 써 내려가신 것이라 짐작됩니다.

‘1950년 11월 7일 밤 12시…’ 헤아려 보면 오랜 시간이 흐른 71년 전의 일이지만, 지금도 글을 읽으면 그 어른의 비감했을 심정이 생생히 느껴집니다. 160쪽의 일기가 시공을 초월해 후손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장인께서는 크리스천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사선을 돌파해 생환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를 표하고, 이는 별빛 되어 지켜준 가족들의 염원과 모든 길을 인도해 준 ‘최고의 힘’의 존재 덕택이었음을 고백하며 글을 맺고 있습니다.

두말할 나위 없이 6·25한국전쟁은 민족의 대재앙이었습니다. 북한의 불법 남침으로 시작된 3년간에 걸친 전란의 결과 500만 명 넘는 막대한 인명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전쟁미망인과 고아, 이산가족 등까지 포함하면 전재민(戰災民)의 수는 1000만명 이상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전쟁터였던 전 국토는 완전히 초토화됐고 사회 경제체제의 기반은 철저히 붕괴됐습니다. 동족상잔의 전쟁 끝에 남은 것은 폐허와 절망뿐이었습니다. 희망의 징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곱씹어 보면 이 암울한 시대를 겪어내고 살아낸 선배 세대들은 그래서 위대합니다. 전란의 잿더미 가운데 가정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나라를 재건한 할아버님 할머님, 아버님 어머님들은 후손들의 박수를 받아 마땅합니다.

몇 해 전 상영되었던 <국제시장>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영화는 현재까지도 역대 한국 영화 흥행 실적 4위의 기록을 지키고 있습니다. 국민 세 사람 중 한 명꼴인 1400만 명 넘는 관객이 영화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국제시장>의 영어 제목은 ‘Ode to My Father’, 즉 ‘아버지께 바치는 헌사’입니다. 실제로 윤제균 감독은 작고한 선친을 그리며 영화를 제작했고, 주인공 이름인 ‘덕수’와 ‘영자’도 부모님의 성함 그대로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가장 평범한 아버지의 가장 위대한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1950년 6·25한국전쟁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격변의 시대를 살아 온 우리 부모님들의 영상 자서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독일의 광산, 베트남의 전장, 열사의 땅 중동에서 오직 가족을 위해 끈질기게 버텨내는 아버지의 삶을 보며 관람객들은 눈물을 쏟았습니다. 평생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살아 본 적이 없는 영화 속 아버지의 모습은 주위의 수많은 ‘덕수’ 씨들을 새삼 떠올리는 계기가 됐습니다.

어떤 시인의 표현처럼 생활이 곧 전투였던 수난의 시대를 겪으며 우리의 아버지들은 아내와 아이들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하루에도 다섯 번 허리를 굽혔고 하루에도 여섯 번 자존심을 죽여 가며 가정을 지켜냈던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인고의 시간을 살아내신 어르신들 한 분 한 분은 걸어 다니는 도서관이며 움직이는 인생 교본입니다. 삶의 굽이굽이를 지나며 체득하신 그분들의 경륜은 어떤 책과도 비교할 수 없는 지혜의 보물창고입니다. 몇몇 지방자치단체, 복지관, 시민모임 등에서 ‘어르신 자서전 쓰기 사업’을 벌이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피와 땀과 눈물로 집안과 나라를 일으켜 세운 부모님들의 삶의 기록은 그 자체가 바로 소중한 현대사의 교과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한국 교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 복음이 전해진 지 불과 130여 년, 우리나라는 세계가 주목하는 부흥을 이룬 나라, 유수의 선교강국으로 도약했습니다. 이 자리에 이르기까지 오직 주님을 바라보며 순종 충성 헌신해 온 선대의 신앙 역정은 살아 숨 쉬는 신앙지침서의 소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꼭 유명인들만 자서전을 내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쓸 수 있습니다. 풍성한 경험과 지혜가 담긴 진솔한 자서전들이 우리 주변에서 더욱 많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로다”(신 32:7).

김성동 장로(전 국회의원)

 

기사입력 : 2021.06.20. am 09:36 (입력)
김성동 장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