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인류와 이스라엘의 역사가 기록된 역사책이다. 성경 한 구절은 한 개의 구절 이상의 의미와 역사·정치·문화·사회적 배경을 함축하고 있다. 성경에 기록된 사건과 구절들을 넓은 시야로 혹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세하게 접근함으로써 성경 전체를 조금 더 잘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순복음가족신문은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기록한 성경구절의 행간을 풀어 성도들이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하나님의 공의는 사랑과 은혜, 화해와 용서 안에서 이뤄져야
"다윗의 시대에 해를 거듭하여 삼 년 기근이 있으므로 다윗이 여호와 앞에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의 집으로 말미암음이니 그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음이니라 하시니라 기브온 사람은 이스라엘 족속이 아니요 그들은 아모리 사람 중에서 남은 자라 이스라엘 족속들이 전에 그들에게 맹세하였거늘 사울이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하여 열심이 있으므로 그들을 죽이고자 하였더라 이에 왕이 기브온 사람을 불러 그들에게 물으니라"(삼하21:1~2)
2) 기브온족의 이스라엘 편입
가나안 족속의 종교 혼합주의, 쾌락주의, 윤리적 타락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대단히 위협적이었다. 과학적인 지식이 없었던 시대에 기이한 자연적 현상들은 다신론적 맹신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유대교는 손쉬운 다신론이 아니라 믿음에 근거한 유일신 사상을 갖고 있었다.
유일신 사상은 인간의 감성이나 종교적 편의성에 의존하지 않는다. 율법에 기록된 내용과 방식대로 종교적 행위가 이루어져야 했고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거룩한 삶이 요구되었다. 하지만 쾌락주의는 이런 이스라엘 백성의 삶을 아주 쉽게 유혹으로 이끌어 갔다. 그 결과 거룩한 삶은 죄 된 삶으로 쉽게 바뀌었다.
이런 위험에 노출되고 나중에는 헤어날 수 없게 될 것을 아셨기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한 것은 가나안 족속과 근원적인 단절이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기브온족에게 속아 조약을 체결했다. 그것도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이방 족속의 방식대로 계약을 체결했다. 조약 자체도 문제였지만 방법과 절차에도 문제가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묻지 않고 고대 근동의 전통에 따라 기브온 사람의 음식을 취하는 방식으로 평화 조약을 맺었다(수 9:15). 서로 먹고 마시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평화의 조약이 이루어졌으나 이스라엘 백성은 기브온족에게 속고 있었다.
성경은 기브온과 체결한 계약 방식이 '그들(기브온 사신)의 양식을 취하는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수 9:14). 기브온의 사신들이 갖고 온 음식은 곰팡이가 핀 일반적으로 먹을 수 없는 음식이었는데 어떻게 이것을 먹을 수 있었을까? 이것은 두 가지로 해석되고 있다. 첫째, 계약 체결을 위해 곰팡이가 난 양식의 일부를 실제로 먹었다는 것과 둘째, 그냥 양식을 취하기만 하고 먹지는 않았다는 해석이다. 지금이라면 당연히 곰팡이가 난 음식을 먹지 않았겠지만, 근동 지방의 관습을 고려할 때 계약 체결의 완성을 위해 곰팡이 피지 않은 쪽의 음식 일부를 떼어 나눠 먹었을 가능성이 크다. 음식을 먹고 안 먹고의 문제보다 더 큰 문제는 가나안의 모든 족속을 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기브온 족속과 계약을 체결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수장이었던 여호수아는 기브온족을 죽이지 않고 살리겠다는 조약을 맺었고 이스라엘 지파의 족장들도 모두 동의했다(수 9:15). 그러나 그들이 저지른 엄청난 실수를 깨닫는 데는 3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계략에 넘어간 것이기는 하지만 엄연히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체결했기에(수 9:18) 다시 바꿀 수 없었다. 속임수까지 써가며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했던 기브온 사람들은 그들의 소원대로 이스라엘 민족에 동화되었고 하나님의 제단을 섬기는 영광스러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삶은 사울 왕 때 완전히 유린당하였고 기브온족 전체가 몰살당할 위기에 처하게 됐다.
2. 역사를 왜곡하는 사울
사울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라는 영예를 안았으나 여러 번 하나님의 뜻과 어긋난 행동을 했다. 여호수아는 기브온족을 살려 하나님의 제단을 위해 나무를 패고 물을 긷는 자들로 삼았다(수 9:27).
이런 기브온족의 삶은 비록 이방인이었으나 하나님의 제단을 섬기며 헌신 된 삶을 살았기에 선교적인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만민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가 구약의 역사에도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정이야 어쨌든 오랜 세월 동안 이스라엘 민족에 편입돼 성전을 섬기며 살아오던 기브온족이었는데 사울왕이 갑자기 그들을 말살할 계획을 세우고 실행했다. 성경은 사울이 이런 일을 계획하고 실행한 것은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의 환심을 사기 위한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삼하 21:2).
이 사건은 기브온 족속에게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성경은 사울이 언제 얼마나 많은 기브온 사람을 죽였는지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사무엘하 21장 5절은 사울이 기브온족을 '학살'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학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칼라누'이다. 이 단어의 뜻은 '끝내다'(finish), '완성하다'(accomplish)는 의미이다. 사울이 기브온 사람 한두 명을 죽인 것이 아니라 기브온족 전체를 말살시키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고 실제로 실천에 옮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고한 기브온 사람들이 억울한 죽음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는 사울과 다윗의 왕권 교체와 맞물려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완전히 묻혀 버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것을 잊지 않으셨다. 다윗왕 때 3년 동안의 큰 기근이 발생했다. 다윗은 계속되는 가뭄이 무엇 때문인지 알기를 원했고, 하나님께서 사울이 흘린 기브온 사람들의 피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삼하 21:1).
3. 솔로몬의 재판에 비할 다윗의 판결
왕위에 오르기 전, 사울은 한없이 겸손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보좌에 오른 뒤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자신의 왕권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사울은 백성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무엇이든 하려고 했다. 기브온족도 마찬가지였다. 피의 순수성을 강조하며 이방 족속에게 반감을 품고 있던 일부 백성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하나님의 제단을 섬기고 있던 기브온족을 완전히 말살하려 했다. 하지만 그의 뜻을 이룰 수는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다윗이 왕으로 등극했다. 그러나 다윗은 왕으로 등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바로잡지 못하고 있었다. 어쩌면 다윗은 사울왕 때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사울의 때 뒤틀렸던 역사와 공의를 다윗을 통해 다시 바로 세우기를 원하셨다.
성경에 기록된 재판 중에 으뜸이라고 할 수 있는 두 판결은 솔로몬의 판결과 다윗의 판결일 것이다. 모두가 잘 아는 것처럼, 한 아기를 두고 서로 자기 아이라고 다투던 두 여인에 대한 솔로몬의 판결(왕상3:16~28)은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판결 중의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솔로몬의 판결과 같이 지혜가 번뜩이는 판결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들게 한 것이 다윗의 판결이다.
1) 피해자 중심의 판결
다윗은 먼저 기브온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결해 줬으면 좋겠냐'고 묻는다(삼하 21:3). 일방적인 행정명령이나 법 집행이 아니라 피해자 중심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기브온 사람들은 자신들을 살육하는데 가담했던 모든 사람을 벌해 달라고 하지 않는다. 단지 자기 민족을 학살하는데 주동적인 역할을 했던 사울의 아들 7명을 내어 달라고 요구한다(삼하 21:6). 사울의 일곱 아들은 한날에 기브온 사람들에 의해 목매달려 죽었다. 그런데 여기서 기브온족의 모든 원한이 풀리고 3년 동안 기근으로 고통을 받던 땅에 비가 내린 것은 아니다.
2) 화해의 판결
비록 죄 없는 기브온 사람을 학살하는 일을 기획하고 실행했다가 그 벌로 죽은 사울의 아들들이었지만 다윗은 목이 매여 죽은 이들의 시체를 거둬들인다. 그리고 사울과 요나단의 뼈와 함께 그들의 할아버지이며 사울의 아버지인 기스의 묘에 가족장으로 합장을 한다. 이렇게 다윗이 죽은 사울의 아들들을 위해 장사 지내는 것을 마쳤을 때, 하나님께서 비로소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삼하 21:14).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는 것은 단순히 원한과 억울함을 푸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사랑과 은혜, 화해와 용서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다윗이 사울의 아들들의 시체를 거둬들여 가족묘에 장사지낸 것처럼,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 긍휼함이 공의 가운데 있어야 한다. 사무엘하 21장에 기록된 기브온족과 이스라엘 백성 간의 얽히고 설킨 사건은 하나님의 언약과 공의, 공의가 실현된 이후의 화해와 용서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단편으로 보여 주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상윤 목사(홍콩순복음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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