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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마음

누가복음 15장에는 제 분깃을 챙겨 집을 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간 자녀들을 오래 참고 기다려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비유한 것입니다. 육신의 부모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아버지와 어머니의 심정은 '기다리는 마음'으로 함축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려선 안고 업고 얼려 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맘/ 앓을사 그릇될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위에 주름이 가득…"(양주동 작사 이흥렬 작곡  『어머니의 마음』 중).

'송혜희.' 이름만 듣고 그가 누군지를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도로변에서 종종 마주치는 애절한 현수막을 연상하면 새삼 떠오르는 이름입니다. "실종된 송혜희를 꼭 좀 찾아주세요!"

경기도 평택 송탄여고 2학년이었던 송혜희 양(39·실종 당시 17세)은 1999년 2월 13일 밤 10시경 경기도 평택시 도일동 하리입구 버스정류장에서 내린 뒤 실종됐습니다. 키 163㎝에 둥근 얼굴형, 피부는 검은 편, 실종 당시 흰색 블라우스와 빨간색 조끼, 파란색 코트를 입고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버스정류장에서 집까지 2㎞의 귀갓길은 가로등조차 거의 없던 어둡고 인적 드문 좁은 농로였습니다. 사흘이 지나서야 본격 수사에 나선 경찰이 일대를 샅샅이 수색했지만 아무런 흔적도 찾지 못했습니다. "낯선 30대 남자가 정류장에서 같이 내렸고 집 방향으로 걸어가는 송 양을 조금 뒤에서 따라 걸어갔다"는 버스 운전기사의 증언만이 유일한 단서였습니다.

사건이 미궁 속으로 빠져들면서 송 양 부모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습니다. 수사를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운영하던 축사 사업을 정리하고 딸을 찾아 나섰습니다. 1톤 트럭에 전단과 현수막을 싣고 전국을 다녔습니다. 서울 중심가부터 해남 땅끝마을까지 딸을 찾는 현수막을 요소요소에 걸고, 실종 당시의 모습과 현재 추정 모습이 담긴 2000~3000장의 전단을 매일 나눠 주었습니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난 2006년 또 다른 큰 불행이 이 가정을 덮쳤습니다. 우울증을 앓던 혜희 양의 어머니가 전단을 끌어안은 채 농약을 마시고 세상을 버렸습니다. 아버지 송길용(68) 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때의 심경을 이렇게 밝혔습니다. 아내를 따라가려고 했지만 "아빠마저 죽으면 난 어떡해요"라는 큰딸의 애원에 생각을 바꿨다고….

그때부터 아빠는 죽는 것을 포기한 대신 딸을 찾는 일에 더욱 전념했습니다. 친구나 지인들은 "집착을 버리라"고 충고를 하기도 했지만 딸과 아내의 얼굴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생사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결코 이 노력을 포기할 수 없다"는 송 씨. 그에게 이유를 물으면 답은 단 한 가지입니다. "내가 혜희 아빠잖아요!"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이 모두 이달에 들어있습니다. 그 가운데 끝자락 5월 25일에 '세계 실종아동의 날'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가족의 실종은 모든 것을 무너뜨리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05년 '실종아동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습니다. 이후 제반 법체계는 치밀하게 정비되어왔습니다. 예를 들면 현행 '실종아동법'은 적용대상으로 '실종 당시 18세 미만의 아동'뿐만 아니라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 정신장애인'과 '치매환자'를 함께 포함하고 있습니다.

'실종아동등'의 조속한 발견과 복귀를 위해 보호자가 신청하면 지문과 얼굴을 경찰 정보시스템에 등록 보관하고 사전신고증을 발급하는 규정도 명기되어 있습니다. 또한 대형 쇼핑몰, 역과 터미널, 놀이동산 등 대규모 시설에서 실종신고가 접수될 경우의 행동 지침도 상세하게 규정돼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적 정비에도 불구하고 실종 사건은 여전히 계속해 발생하고 있습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에도 총 3만 8496건이 신고 되었고, 이 가운데 161건은 아직 미발견 실종상태로 남아 있습니다(2020.12.31 기준). 사건의 예방과 조속한 실종자 발견을 위해서는 법적 장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음을 실증하는 통계입니다. 범사회적 관심과 협조가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지난해 12월 '방배동 모자사건' 해결의 결정적 역할을 한 사회복지사 정미경 집사님의 사례는 귀감이 됩니다. "우리 엄마는 5월 3일에 돌아가셨어요. 도와주세요"라고 적은 종이쪽지를 앞에 놓고 지하철 이수역 부근에서 노숙을 하던 발달장애인 최 모 씨(37).

6개월간 수많은 사람들이 그 앞을 지나갔지만 누구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 집사님만은 우연히 만나게 된 최 씨를 소홀히 보아 넘기지 않았습니다. 타인에 대해 극도의 경계심을 보이던 그를 인내와 사랑으로 보살폈고 마침내 한 달 만에 마음을 열게 했습니다. 그리고 최 씨의 호소대로 모자가 거주하던 방배동 다세대주택에서 7개월간 숨진 채 방치되어 온 어머니의 시신을 발견했습니다.

이 '방배동 모자의 비극'은 현 사회안전망의 실태를 드러내는 충격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 사회복지사의 세심한 눈길과 투철한 사명감에서 비롯된 의미 있는 결과였습니다. 이처럼 우리들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은 회복의 기적들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가정의 달 5월을 보냅니다. 빛이 바랠만하면 다시 걸리고 다시 걸리는 그 현수막을 보며, 지난 22년 오매불망 딸을 기다려온 혜희 아빠의 애끓는 비원이 꼭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김성동 장로(전 국회의원)

 

기사입력 : 2021.05.23. am 09:49 (편집)
김성동 장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