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의 때 다가올수록 성령의 역사와 악령의 정체 온전히 분별해야
성령 충만한 역사를 통해 나타나는 다양한 은사 중에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행하는 은사들이 있다. 이런 능력을 행하는 은사 중에 ‘영들 분별함의 은사’가 있다. 고린도전서 12장에는 10절에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 주시나니”라고 기록돼 있다.
‘영들 분별함’이라는 표현은 ‘영’(靈)을 의미하는 헬라어 명사 ‘프뉴마’(pneuma)와 ‘분별함’을 의미하는 헬라어 명사 ‘디아크리시스’(diakrisis)를 함께 사용한 표현이다. 명사 ‘프뉴마’는 ‘바람, 숨, 호흡’의 원래적 의미를 지니며 신약성경에서 379회나 등장하는 단어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영 곧 성령’, 즉 근원이자 본질인 하나님께 가장 직접적으로 속해있는 힘을 언급할 때 단연 자주 사용된다(250회 이상). 명사 ‘디아크리시스’는 ‘분별/판단하다’라는 뜻의 동사 ‘디아크리노’(diakrino)에서 파생된 단어로 ‘분리’ ‘분별’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드물게 ‘심판’ 혹은 ‘다툼’이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신약성경에 단 3회만 등장하는데 ‘영들의 구별’이란 의미로(고전 12:10) 그리고 ‘선악의 구별’의 의미로 사용됐으며(히 5:14) ‘다툼’이라는 뜻으로 사용됐다(롬 14:1).
교회에서 일어나는 영적인 역사 특히 ‘예언’이나 ‘계시’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이기 때문에 분별하기 힘들며 그로 인해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성령의 충만함을 통해 주어지는 ‘영들 분별함의 은사’이다. 그것은 영적인 역사나 계시와 예언의 말씀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사람에게서 온 것인지 아니면 사탄에게서 온 것인지 분별하게 하는 능력이다.
가장 좋은 예가 성경에 등장한다. 열왕기상 22장을 보면 북이스라엘의 아합왕은 우상을 숭배함으로 하나님을 진노케 했고 결국 심판이 아합에게 임했다. 그것은 전쟁을 통해 실현됐다. 아합의 제안으로 남유다의 여호사밧 왕은 아람 왕국의 길르앗라못을 치겠다고 약속했으나 먼저 선지자들을 불러 하나님의 뜻을 묻자고 제안했다. 불려온 시드기야를 포함한 400여 명의 선지자들은 이 전쟁에서 아합이 승리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만족하지 못한 여호사밧은 또 다른 선지자는 없느냐고 물었다. 마지못해 아합은 선지자 미가야를 불러 예언케 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번 전쟁에서 아합을 죽이시려 작정하셨고 먼저 선지자들에게 거짓 예언을 하게 하신 것이라 알려주었다. 하지만 미혹의 영에 붙들린 거짓 선지자 시드기야는 참 선지자인 미가야의 뺨을 치며 핍박했다(왕상 22:24). 미가야의 예언을 들은 아합왕은 찝찝한 마음이 들었던지 왕복을 벗고 변장한 모습으로 전쟁에 나갔지만 한 병사가 우연히 쏜 화살에 맞아 결국 죽음을 맞이했다(왕상 22:30~37). 아합이 인간적인 꾀를 내 죽음을 피하려 했지만 결국 미가야의 예언대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인간의 잔꾀가 하나님의 뜻을 꺾을 수 없다는 영적 의미가 있다.
세상에는 하나님께 속한 영들과 마귀에게 속한 영들이 존재한다. 종말의 때가 다가올수록 성령의 역사와 악령의 정체를 분별해야 한다(요일 4:1). 성경은 미혹의 영인 사탄의 가르침에 성도들도 미혹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딤전 4:1).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묵상할 때 성령께서는 ‘영들 분별함’의 은사로 우리의 삶을 풍성케 하실 것이다.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일 4:2~3).
김에녹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