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물질의 많고 적음, 명예나 권세의 높고 낮음에 따라 관계의 질서를 규정합니다. 그러나 모든 관계는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 질서가 정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간 창조 사역에서 드러난 질서를 통해 부부 관계, 부모 자식 관계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창조 질서와 부부 관계

하나님은 남자를 먼저 지으신 다음, 남자의 갈빗대 하나를 취해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그 후 여자를 남자에게로 이끌어 부부가 되게 하심으로써 가정 공동체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부부는 하나님이 만드신 공동체인 가정의 기본 단위이자 바탕입니다.

남자의 갈빗대를 취해 여자를 만드신 것은 여자가 남자에게 예속되었다거나 남자보다 열등한 존재임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부부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강하게 결속되는 것인지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남자가 여자를 처음 보고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 2:23)고 외친 것은 여자가 자신의 갈빗대에서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 아닙니다. 여자가 자신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그 즉시 알아차린 데서 나온 반응입니다. 같은 인간으로서의 여자를 처음 마주한 데서 나온 감탄입니다.

부부는 동등한 존재인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하나가 되도록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입니다(마 19:6). 부부는 서로를 자기 몸처럼 아끼고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이 이뤄주신 하나 됨을 인정하고 실현해 나가야 합니다.

2. 창조 질서와 부모 자식 관계

그렇다면 자녀는 어떨까요?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자 축복이지만(시 127:3), 부모의 소유물이나 부속물이 아닙니다. 부부는 나뉠 수 없는 하나지만, 자녀는 제 짝을 찾고 부모를 떠나야 하는 독립적인 존재입니다. 자녀가 부모를 떠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입니다. 자녀가 부모를 떠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아담과 하와가 부부가 된 직후 다음과 같은 말씀을 주신 데서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

부모에 대한 자녀의 몫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부모 공경은 십계명 중의 하나로서 십계명의 두 번째 부분인 대인관계에 대한 계명 가운데 첫 계명입니다. 즉 대인관계의 바탕이자 기본이 부모 공경입니다. 바울 사도는 십계명 가운데 부모 공경의 계명이 약속을 담고 있는 유일한 계명이라는 것에 주목하면서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라고 강조했습니다(엡 6:2). 자녀가 맺는 첫 번째 인간관계라고 할 수 있는 부모와의 관계에서 부모 공경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은 자녀가 이 땅에서 형통한 삶을 살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배우자에 대한 사랑은 매우 강조하는 반면, 자녀에 대한 사랑은 계명으로서 따로 교훈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일 테지만 성경적으로 우선순위를 정한다면 부부간의 사랑이 자녀에 대한 사랑보다 앞서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배우자와의 불화를 이유로 자녀에게 정서적으로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대리 만족을 얻으려고 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배우자와의 갈등을 핑계로 소통을 포기한 채 자녀에게만 온갖 애정과 관심을 쏟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녀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인생의 과제까지 부모 자신의 몫으로 여겨 그 짐을 지려고 하면서도, 배우자가 겪는 어려움에는 냉담한 경우도 있습니다.

자녀 사랑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부부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 사도가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이 어떠해야 함을 두고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모범을 제시해 준 데에서 알 수 있듯이 배우자에 대한 사랑에는 십자가를 지는 수고와 인내, 희생이 필수적입니다(엡 5:25). 십자가 고난이 없이는 부활의 영광도 없다는 구속사적 교훈이 가장 먼저 적용되어야 할 영역이 바로 부부 관계입니다. 달리 말하면 부부간의 온전한 사랑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세워나가기 위한 첫 단추입니다.<다음 편에 계속>

오정섭 목사(국제신학훈련원 신학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