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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1926년 6월 『개벽』 70호에 발표된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 구절에서 ‘들’은 국토를, ‘봄’은 조국의 광복을 의미합니다. 일제강점기 빼앗긴 국토에 또다시 찾아온 봄을 보며 해방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시인의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우리 곁으로 찾아오는 봄을 보며, 빼앗긴 들에 찾아온 봄을 보던 시인의 마음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요? 우리 역시 지난 한 해를 코로나19로 인해 빼앗겨 버렸기 때문은 아닐까요? 지난 한 해 우리는 아름답게 피던 봄날의 진달래와 개나리와 벚꽃을 보지 못했고, 하얗게 부서지던 여름날의 파도와 산천을 붉게 물들이던 가을 단풍을 보지 못했습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떡국을 먹고 세배를 하던 설날과 1년의 수확을 감사하며 송편을 빚던 추석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가르침을 주셨던 선생님과 정들었던 친구들과 헤어지는 졸업식, 새로운 출발 앞에서 설레던 입학식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아이들은 정든 교실과 뛰놀던 운동장, 친구의 따뜻한 온기를 빼앗겨 버렸고, 멀리 시골에 계신 부모님은 명절이면 찾아오던 자식들과 손주들을 맞는 기쁨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이렇듯 우리의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빼앗겨 버린 들판 위로 진정한 봄은 오는 것일까요?

 작년 12월 8일 영국의 마가렛 키넌 할머니는 코로나19 백신 세계 최초 접종자가 되었습니다. 당시 90세였던 키넌 할머니는 백신 접종 후에 “내가 바랄 수 있는 최고의 생일선물을 앞당겨 받았다”며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올 한 해 대부분을 혼자서 보내다가 드디어 새해에는 가족 및 친구들과 보내는 것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고 코로나19 이후의 삶을 이야기했습니다. 이렇게 영국에서 시작된 백신 접종은 미국, 캐나다, 이스라엘 등 전 세계에서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2월 26일 접종이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전 세계가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백신 접종을 통해서 ‘집단 면역’이 형성이 되면 오래지 않아 코로나19가 종식되리라는 기대감이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최근 CNN방송에 따르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됐던 이력이 있는 임신부 83명 중 72명이 낳은 아기에게서 면역글로불린G 항체가 발견됐다고 합니다. 면역글로불린G 항체는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위험을 낮춰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19에 감염된 산모에게서 난 신생아 중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례가 없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입니다. 산모가 가진 항체가 임신 기간 중 태아에게로 전달됨으로써 바이러스로부터 태아가 보호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세상 여기저기서 코로나19 정복에 대한 기대감들을 높여가고 있습니다.

 길고 길 것만 같던 일제강점기는 1945년 8월 마침내 끝이 났습니다. 빼앗긴 들에 봄이 온 것입니다. 무려 35년간이라는 긴 겨울의 끝에 봄이 찾아온 것입니다. 코로나19로 시작된 두려움의 겨울 역시 마침내 끝이 올 것입니다. 빼앗겨버린 삶의 들판에도 반드시 봄이 올 것을 믿습니다. 그 봄을 기다리며 조심스럽게 ‘희망’이라는 단어를 가슴에 새기는 2021년 3월이 되길 소망합니다.

 

기사입력 : 2021.03.07. am 10:23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