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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 25.불에 타지 않는 떨기나무와 하나님의 산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인류와 이스라엘의 역사가 기록된 역사책이다. 성경 한 구절은 한 개의 구절 이상의 의미와 역사적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배경을 함축하고 있다. 성경에 기록된 사건과 구절들을 넓은 시야로 혹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세하게 접근함으로써 성경 전체를 조금 더 잘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순복음가족신문은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기록한 성경구절의 행간을 풀어 성도들이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간 모세

'야훼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출 3:2)

모세, 그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지도자요 선지자였다. 태어나 3개월 만에 이집트의 공주에게 입양되어 자랐던 모세는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했다(행 7:22). 그러나 광야 40년의 세월 동안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출 4:10)가 돼 있었다. 그렇게 모세는 돌고 돌아 80세가 되어서야 자신의 소명 앞에 섰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선 모세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야훼'로 부르게 되었다. 아무도 그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않는 광야의 삶은 그의 정체성을 흔들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이 끝나버릴 것 같았던 모세와 하나님의 만남은 한 떨기나무 앞에서 이루어졌다.


1. 시내산? 호렙산? 모세의 산? 하나님의 산?  

모세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잊지 못할 장소를 성경은 여러 이름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 거룩한 산은 성경 지명과 현지인들에 의해 불리는 이름을 합쳐 대략 4개 정도 된다(시내산, 호렙산, 모세의 산, 하나님의 산).

1) 시내산

이들 중 '호렙산'(출 3:1; 17:6; 33:6)과 '시내산'(출 16:1; 19:20, 23; 31:18; 34:2; 삿 5:5; 행 7:30, 38)은 여러 본문에서 서로 다르게 기록되고 있어서 성경의 난제로 다뤄지기도 한다. 시내산은 구약성경에 17차례 등장하는데 대부분 신명기에 기록되어 있고 그 외에 출애굽기, 열왕기상, 역대하, 시편, 말라기 등 구약성경 전반에 걸쳐 기록되었다. 그중에 15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신 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장 칼뱅은 출애굽기 3장 1절을 주석하면서 같은 산의 동쪽은 '시내산', 서쪽은 '호렙산'이라고 불렸다고 이해하고 있다. 중세시대의 저명한 성경 주석가였던 에스라(Abraham Ibn Ezra)도 시내산과 호렙산을 동일한 산의 두 개의 다른 봉우리로 이해했다.

2) 호렙산

호렙산과 시내산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 신학적 고고학적인 논쟁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전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시나이 반도(Sinai Peninsula)가 아닌 아라비아 반도(Arabian Peninsular)에 있다는 일부 검증되지 않는 주장도 있다. 이 주장은 아마추어 성서고고학 탐험가인 론 와이어트(Ron Eldon Wyatt, 1933~1999)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으로 사우디아라비아 북부에 위치한 라오즈산(Jabal al-Lawz)이라는 일방적인 주장이다. 이를 바탕으로 『떨기나무』라는 책으로 출판되어 쟁점이 되기도 했었다.

'호렙산'은 모세오경 외에 아합 왕과 엘리야의 이야기 속에서 다시 한 번 등장한다. 아합은 북이스라엘 왕국의 왕이었지만 남유다 왕국까지 모두 합쳐 이스라엘 왕 중에 가장 악했던 왕으로 기록되고 있다. 아합이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악한 왕이 되는 데는 시돈 왕 엣바알(뜻, '바알과 함께한 자')의 딸인 이세벨(왕상 16:31)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세벨은 450명의 바알의 선지자들이 엘리야와의 갈멜산 대결에서 철저하게 패했음에도 불구하고(왕상 18:20~19:1), 엘리야를 찾아 죽이려고 했다(왕상 19:2).

엘리야는 서슬이 퍼런 이세벨의 피의 복수를 피해 호렙산으로 들어갔다(왕상 19:8). 호렙산은 아합의 군대가 엘리야를 찾기에 쉽지 않은 산세와 지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호렙'의 원어적인 뜻은 '빛나는' 혹은 '열'로 태양을 상징한다. 그리고 '시내'는 수메르어로 '달'에 해당한다. 그래서 높은 산에 두 봉우리가 있는데 각기 그 이름이 '태양'(호렙)과 '달'(시내)로 불려서 이름이 서로 다르게 표기되었지만 같은 산으로 이해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고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3) 모세의 산

'시내산'이나 '호렙산'과 같은 성경의 지명과는 상관없이 시나이 반도에 오랫동안 살아왔던 현지인들은 이 산을 '제벨무사'(Jabal Musa) 즉 '모세의 산'이라고 부르고 있다.

현지인들은 유대인들이 아니라 아랍인이다. 구약 성경을 읽어 본 적이 없는 이들이 이 산을 '모세의 산', '제벨무사'라고 부는 것은 약 3500여 년 전에 이 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전해 들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제벨무사(시내산 혹은 호렙산)는 해발 2285m로 우리나라 한라산(1950m)보다는 높고 백두산(2744m)보다는 낮다.

모세는 이곳에서 불과 화염에 쌓여 있었으나 타지 않는 떨기나무를 발견했다. 이 기이한 현상을 보고 하나님의 임재를 직감한 모세는 감히 그 앞에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아가지도 물러나지도 못하고 있던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신다(출 3:5). 유대의 종교적 문화적 전통에 의하면 신을 벗는 행위는 여러 가지로 해석된다. ① 슬픈 일을 당했을 때 애곡의 표시이기도 하고(삼하 15:30), ② 포로나 노예들도 신발을 벗어야 했고(대하 28:15; 사 20:2), ③ 룻기에 기록되어 있듯이 자신의 권리를 다른 사람에게 넘길 때(룻 4:7), ④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는 행위(출 3:5)를 나타낸다. 모세는 이곳 '모세의 산'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갔다.

4) 하나님의 산

출애굽기 24장 13절은 다른 특별한 지명 없이 모세가 여호수아와 함께 '하나님의 산'에 올랐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의 산'이라는 표현은 출애굽기 3장 1절에도 등장한다.

모세는 출애굽을 한 후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그가 처음 하나님께 소명을 받았던 산에 다시 오르게 되었다. 처음엔 홀로 섰던 그곳에 이제는 사명을 감당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고 리더로 다시 서게 된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산'에서 하나님과 파기될 수 없는 언약을 맺게 되었다(출 24:12). 모세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떨기나무가 있는 곳에는 수도원이 세워져 있다.


2. 떨기나무와 성 캐더린 수도원

시내산 중턱에는 수도원이라기보다는 적을 물리치기 위해 잘 지어진 요새 아니면 중세의 성을 연상시키는 성 캐더린(St. Catherine) 수도원이 있다. 이 수도원이 시내산 중턱에 건설된 이유는 모세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한 떨기나무 때문이다.

3세기 중반 로마 황제의 기독교 박해가 절정에 달하고 있었을 때 많은 수도사들은 산세가 험한 시내산에 들어와 동굴 속이나 움막을 짓고 수도 생활을 시작했다. A.D. 330년 경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캐더린의 순교를 기념해 불타는 떨기나무 자리에 예배당을 지어 헌당함으로써 현재의 성 캐더린 수도원의 모체가 되었다. 지금도 불붙는 떨기나무 기념 예배당에는 반드시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한다.

이후 7세기에 접어들면서 이슬람의 팽창으로 큰 위기를 맞게 됐다. 광야로 찾아들었던 수많은 수도사들은 30여 명으로 줄어들었다. 이슬람의 박해가 심해 질 때 전승에 의하면 수도원장은 마호메트에게 시내산에서 수도하고 있는 수도사들과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을 보호해 줄 것을 요청했다. 마호메트가 이 요청을 받아들였고 손바닥으로 날인한 문서를 받게 되었다. 이 문서가 진짜 마호메트가 쓴 것인지 아니면 박해를 벗어나고자 수도원장이 자의적으로 기록한 것인지에 대한 진위가 여전히 논쟁 중이지만 어쨌든 이 문서로 인해 성 캐더린 수도원은 이슬람의 파괴와 약탈로부터 벗어나 오히려 보호를 받게 되었다.

성 캐더린 수도원의 또 다른 주목할 만한 가치 중 하나는 시내사본(Codex Sinaiticus)이다. 1844년 독일인 티센도르프(Constantin Tishendorf)는 이곳에서 구약성경의 대부분과 신약성경의 일부가 수록되어 있는 시내사본을 발견했다.

모세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던 가시덤불은 지금도 꺼지지 않는 기독교 순교의 역사와 성경의 역사 한 가운데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다.

이상윤 목사(홍콩순복음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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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02.07. am 09:40 (편집)
이상윤 목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