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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 24. 나답과 아비후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인류와 이스라엘의 역사가 기록된 역사책이다. 성경 한 구절은 한 개의 구절 이상의 의미와 역사적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배경을 함축하고 있다. 성경에 기록된 사건과 구절들을 넓은 시야로 혹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세하게 접근함으로써 성경 전체를 조금 더 잘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순복음가족신문은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기록한 성경구절의 행간을 풀어 성도들이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하나님께서 지정하지 않은 불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야훼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야훼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야훼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야훼 앞에서 죽은지라"(레 10:1~2)

아론에게는 4명의 아들이 있었다. 이들의 이름은 나답, 아비후, 엘르아살, 이다말이다(출 6:23; 민 3:2; 26:60). 아론의 아들들은 아론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민족의 영적 지도자로서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사람들이었다(민 3:3). 그러나 장남과 차남인 '나답'과 '아비후'가 지성소(Holy of Holies)에 들어가서 죽는 일이 발생했다(레 10:1~2; 민 3:4; 26:61).
나답과 아비후의 사건은 레위기 10장과 민수기 6장, 26장에 반복해서 기록되고 있다. 이처럼 성경에 같은 사건이 서로 다른 곳에 여러 번 반복되어 기록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대부분 그 사건의 사안이 중대할 때이다. 나답과 아비후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적지 않은 혼란을 가져왔다. 이 사건은 단순히 광야시대에 있었던 한 사건으로 끝나지 않았다. 형식적으로 흐르고 있던 이스라엘의 제사와 영적 상태에 경각심을 일깨우고 각성하는 계기를 마련했고 제사장들에게는 개인 경건을 위한 새로운 규정이 만들어졌다. 이 규정은 나실인들이 지켜야 할 규례로 확대됐다.

1. 시내산에 오른 나답과 아비후

나답과 아비후의 행적은 출애굽기에도 기록되어 있다. 출애굽기에 기록된 나답과 아비후는 레위기와 민수기에 기록된 타락한 제사장의 모습이 아니다. 출애굽기 24장은 모세가 하나님의 계명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올라갈 때를 기록하고 있다. 출애굽기 24장 1절에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명과 함께 야훼께로 올라와 멀리서 경배하고"라고 기록하고 있다. 시내산을 오를 때 모세는 이스라엘의 70인 장로와 아론뿐만 아니라 나답과 아비후를 동행하게 했다. 70인의 장로는 이스라엘 전체 민족을 대표하는 사람들이었다. 아론은 모세의 영적인 동역자였고 출애굽의 일등공신이었다. 이들과 함께 나답과 아비후가 시내산에 올랐다는 것은 그때까지만 해도 그들의 영적인 상태가 성소에서 죽을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나답과 아비후는 아버지 아론과 함께 모세를 따라 시내 산에 올라 멀리서나마 하나님의 현현을 보았다(출 24:1).

2. 나답과 아비후의 위임식(Inauguration)

레위기 8~10장은 제사장의 위임식과 취임식(Consecration and Inauguration)에 대한 말씀이다. 이 위임식은 민족의 지도자이며 동시에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했던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으로 제사장 직분을 아론과 그 자손에게 위임하는 예식이었다(레 8장).
이 위임식은 7일 동안 희생 제사로 성대하게 진행됐다(레 8:33~35). 위임식의 절정은 아론의 머리에 거룩한 기름을 붓는 것이었다. 이 기름은 영적인 권위의 상징이었으며 이스라엘 민족에게 부어질 복과 은혜의 상징이었다. 시편은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시 133:2)라고 기록하고 있다. 아론의 머리에 부어진 기름은 아론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려 그의 수염과 옷깃을 적시는 거룩한 모습이었다. 흔히 아론이 먼저 대제사장의 직분을 받고 나중에 아론의 자녀들에게 기름을 부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대제사장 위임식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동시에 이루어졌다(레 8:13~14). 그런데 4명의 자녀 중에 나답과 아비후만 데리고 시내산에 올랐다는 것은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다. 장자와 차남이라는 이유도 있을 수 있으나 시내산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미뤄 볼 때 영적인 권위가 인정되지 않고서는 오를 수 없었을 것이다.

3. 하나님께서 지정하지 않은 불

나답과 아비후가 죽은 직접적인 원인은 '각기 향로들을 가져다가 하나님께서 명하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하나님 앞에 분향했기' 때문이다(레 10:1). 여기서 최소한 두 가지의 문제점이 드러난다.

1) 모든 성전기물은 오직 하나만 만들게 되어 있었다.
복제품을 만들어 사사로이 사용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시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더는 쓸 수 없게 되면 율법에 따라 다시 만들어야 했다. 성막 기물 중에 가장 헷갈리기 쉬운 것은 향로(Censer)와 향단(Altar of Incense)이다. 향단은 조각목으로 만들었는데 크기는 정사각형 모양의 가로와 세로가 각각 1큐빗(약 45㎝), 높이는 2큐빗(약 90㎝)이었으며 순금을 입혀서 만들었다(출 25:38; 30:1~6). 그래서 금향단이라고 불렸고 지성소와 성소를 나누는 휘장 앞에 놓여 있었다. 금향단은 한 곳에 고정되어 있었고 이곳의 불을 옮기는데 사용되는 것이 향로이다.
히브리서 9장 3~4절을 보면 지성소 안에 언약궤와 금향로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것은 지성소 안에 언약궤만 두도록 하신 출애굽기 말씀과 배치돼 보인다(출 26:34). 그러나 향로는 대제사장이 대속죄일에 빛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지성소에 들어가 언약궤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향을 피우기 위해 사용된 것으로 지성소 안에 고정된 기물은 아니었다(레 16:12~13). 성소와 지성소를 오가는 중요한 기물이 향로였는데 나답과 아비후는 지정된 것이 아닌 자신의 향로를 가져다가 분향했다(레 10:1).

2) 하나님께서 명하지 않은 불을 사용했다.
향로의 불은 아무 곳에서나 쓰던 불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었다. 반드시 번제단의 불을 사용해야 했다. 제사장들은 번제단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아침마다 나무를 태우고 그 위에 화목제의 기름을 불살라야 했다(레 6:12~13). 그리고 번제단의 불을 향로에 옮겨 담아(레 16:12~13) 그 불로 성소 안의 향기로운 향을 피워야 했다. 이 향을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이라고 했고 다윗은 그의 시편에서 기도(시 141:2)라고 했다. 신약시대에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서 흠향하시는 향기로운 성도의 기도(계 5:8; 8:3)라고 했다.
제사장의 중요한 직무 중 하나는 금향로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아침과 저녁에 향을 피워 성소를 향기로운 냄새로 가득하게 해야 했다. 이 일을 처음에는 아론이 했었다(출 30:7~8). 하지만 이후 그의 자손들이 제사장으로서 그의 일을 이어받았고 나답과 아비후가 아론의 뒤를 이어 성소에서 분향하게 됐다. 그러나 그들은 번제단의 불을 사용하지 않고 각자 출처를 모르는 불을 가져다가 분향했다.
성경에 기록된 85명의 대제사장 가운데 성소에서 죽은 사람은 나답과 아비후 둘 뿐이다. 나답과 아비후가 대제사장이 아니었다고 하는 견해도 있으나 아론의 일을 직접 이어받은 것과 이스라엘 모든 민족 앞에서 아론과 똑같이 기름 부음을 받은 것을 고려한다면 이런 견해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4. 나답과 아비후 사건 그 이후

나답과 아비후의 사건 직후 하나님께서 이례적으로 모세가 아닌 아론에게 직접 말씀을 하신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론에게 내리신 금지명령은 아론과 그의 자손이 회막에 들어갈 때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는 것이었다(레 10:8~9). 이것은 나답과 아비후가 술에 취해 아무 향로나 들고 성소에 들어가 분향을 했다가 죽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제사장의 금주는 민수기에 등장하는 나실인의 규례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민 6:1~8). 머리를 깎지 말라는 것을 제외한 시체를 가까이하지 말라는 것과 포도주와 독주를 금지한 규례는 제사장들에게 금기되었던 것이 나실인의 규례에 그대로 적용됐다고 볼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답과 아비후는 매일 아침과 저녁에 드려야 했던 분향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하나님의 성소에서 하는 모든 일들에 대한 거룩함과 두려움, 사명감마저 잃어버렸던 것 같다. 그 결과 분향의 시간이 다 되도록 술을 마시고 있었고 급히 아무 향로나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 분향했다가 죽임을 당했던 것 같다.
우리 또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봉사에 익숙해지면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존귀하심을 망각할 때가 있다. 예배는 형식화 습관화 되고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직분의 소중함을 잊고 살아갈 때가 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이상윤 목사(홍콩순복음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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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01.03. am 09:27 (편집)
이상윤 목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