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스티니아누스 황제

476년 서로마를 역사에서 사라지게 한 서고트족의 지도자 오도바카르는 그로부터 17년 뒤인 493년 동고트족의 지도자 테오도릭에 의해 제거되었다. 과거 서로마제국은 게르만 민족 간의 싸움의 장이 되고 말았다. 다시 동고트족을 제압한 것은 동로마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였다(527~565). 그는 벨리사리우스 장군과 환관 나르세스를 기용하여 약 20년에 걸친 긴 전쟁 끝에 동고트족을 제압했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서고트족이 차지하고 있던 지역인 카르타고와 이탈리아 남부, 스페인 남부를 탈환하는 등 옛 로마제국 영토의 약 3분의 2를 회복할 수 있었다. 그가 황제로서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콘스탄티노플에 성 소피아 성당을 건축한 것과 로마제국의 모든 법령을 집대성해서 엮은 『시민법전』을 공포한 것이었는데, 특별히 이 법전은 이후 유럽의 사회법과 교회법의 토대가 된 것으로 유명하다.

유스티니아누스의 위대한 점은 벨라리우스 장군(전쟁), 요하네스(재정), 트리보니아누스(법), 이시도로스와 안티미오스(건축) 등과 같은 인재들을 등용한 것이었다. 특별히 벨라리우스 장군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로부터 534년, 535년에 각각 북아프리카(반달족)와 이탈리아(동고트족)를 수복하여 로마의 옛 영토를 회복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당시 10만 대군의 반달족과의 전투에 황제가 내어 준 병력은 1만 5000명에 불과했고, 이듬해 15만 대군의 동고트족과의 전투를 위해서는 겨우 7000명이었다. 한 줌에 불과한 병력을 이끌고 벨라리우스는 반달족의 왕 겔리메르와 10만 대군을 격파하여 북아프리카를 되찾았고 이후 이탈리아를 차지하고 있던 15만 대군의 동고트족을 격파하여 로마를 탈환하는 공을 세웠다.

유스티니아누스는 즉위하기 전부터 서방교회와 동방교회의 분열을 극복하려 했다. “신이 하나이듯 제국도 하나, 교회도 하나여야 한다”고 주장하던 그는 서방교회가 이단으로 지목하던 동로마제국의 주교들을 파문(519)하는 등 교회의 일치를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오히려 그와 같은 열정적인 노력이 동방과 서방의 신학적 대립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그는 이집트, 시리아 지역에 교회를 포섭하기 위해 단성론(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신성만이 존재한다는 입장)을 옹호하고 그리스도의 인성을 강조하는 자들을 파문했는데 이는 결정적인 패착이 되었다.

이민족의 침략은 물론 대규모 토목공사로 위태로운 재정상황을 메꾸기 위한 제국의 세금정책에 피폐해진 백성들에게 제국의 일치란 허울 좋은 소리일 뿐이었다. 특히 541~542년 2년에 걸쳐 동로마제국을 휩쓴 흑사병은 동방과 서방의 분열에 직격탄이 되었다. 동방의 종교적, 문화적, 정치적 동질감을 상실한 서방은 황제의 사망 직후 동로마제국 치하에서 이탈했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565년 11월 14일 밤 쓸쓸히 숨을 거두었다. 뒤를 이은 조카 유스티누스 2세의 탄식에서 당시 촛불 앞에 놓인 제국의 운명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저 아바르족과 사나운 프랑크족, 게피다이족과 게타이족 그 밖의 많은 민족, 그들은 기치를 나부끼며 사방에서 우리를 공격해 온다. 이 사나운 적들을 물리치려면 어떤 힘을 찾아야 하겠는가? 오, 로마의 힘은 사라졌는가?” 이러한 쇠약해진 국력으로 동로마제국은 사산왕조(페르시아)와 밀고 밀리는 전면전을 치르게 된다. 비록 최후의 승자는 동로마제국(627년 니네베 전투)이었지만 이후 물밀 듯이 쇄도하는 이슬람 세력을 막을 힘이 더는 동로마제국 안에 없었다.

김형건 목사(동작대교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