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사도행전 12장에 기록된 헤롯(아그립바 1세)왕의 비참한 최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그는 예수님 탄생 당시의 ''헤롯왕''(헤롯대왕, 눅 1:5)의 손자이자 훗날 사도 바울을 심문한 ''아그립바왕''(행 26장)의 아버지였다.

그는 먼저 용의주도한 정치가의 모습으로 성경에 등장한다. 백성들의 여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권좌에 앉아 온갖 독선만을 일삼는 독재자와는 거리가 먼 책략가였다. 그는 백성들의 여론 동향을 주도면밀하게 살펴서 그에 맞추어 대응하는 일종의 ''파도타기''에 능한 노회한 정치가였다. 그래서 그는 초대교회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감을 이용해서 시험 삼아 야고보를 잡아서 칼로 죽여보았다. 유대인들이 이를 기뻐하자 이번에는 초대교회의 수장격인 베드로를 잡아서 공개처형 하려고 깊은 감옥에 가두고 중무장한 16명의 병사들로 지키게 했다(행 12:3~6). 헤롯이 죽이려던 전날 밤에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삼엄한 경계를 뚫고 베드로를 구해내지 않았더라면 그 역시 야고보와 같은 운명에 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한 성경은 헤롯왕을 극도로 잔인한 사람으로 묘사한다. 베드로가 감옥에서 사라진 것을 아침이 돼서야 알아차린 헤롯왕은 군인들을 동원해서 곳곳을 수색하도록 해서 대소동이 벌어졌다. 그래도 찾지 못하자 분노한 헤롯왕은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이라"고 명령하고는 예루살렘을 떠나 자신의 할아버지인 헤롯대왕이 로마의 환심을 사고자 황제의 이름을 따서 건설한 지중해 해변 도시인 ''가이사랴''로 내려가 그곳의 호화로운 헤롯궁에 가서 지냈다.

더 나아가 헤롯왕은 자신을 신의 위치까지 높인 교만한 자였다. 무슨 이유에선지 헤롯왕은 이스라엘 북쪽에 있는 베니게(페니키아)의 주요 도시인 두로와 시돈 사람들에 대해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들이 헤롯 왕국의 갈릴리 곡창 지대에서 나는 양식을 수입하기 위해 왕의 침소 맡은 신하인 블라스도에게 접근해서 왕과 화목할 수 있도록 중재를 부탁해서 그것이 성공하게 되었다. 그러자 마침 즉위 20주년을 맞아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헤롯왕의 관용을 칭송하고자 기념행사를 성대하게 열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동시대 세속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도 나온다. 헤롯왕이 은실로 엮은 화려한 옷을 차려입고 아침 일찍 극장에 입장했는데, 그의 옷이 아침 햇살을 받아 눈부신 나머지 그를 바라보던 이들이 두려움과 경외심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이에 헤롯왕이 군중들 앞에서 연설을 하자 그들은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고 외쳤다(행 12:22). 이때 헤롯왕은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고" 자기에게 돌림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벌레에게 먹혀" 죽게 된다. 요세푸스도 ''헤롯이 격렬한 고통에 시달리다가 닷새 만에 사망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대 사회에는 자신을 신의 화신(化身)으로 높인 왕들이 많이 있었는데(예를 들어 수리아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 왕) 로마가 책봉한 꼭두각시왕에 불과한 그가 신을 자처한 것은 분수를 한참이나 넘는 일이었다.

사도행전은 헤롯왕 이야기를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행 12:24)는 선언으로 매듭짓는다. 다시 말해서 헤롯왕으로 대표되는 흑암의 세력이 제아무리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칼을 빼서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까지 죽이려 한다 해도,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교회와 백성을 지키시고, 오히려 헤롯왕을 치심으로써 최후의 승리를 거두신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

김호성 부목사(목회신학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