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도 이제 한 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보통 한 해의 마지막 달에는 지나간 날들을 되돌아보고 다가올 새해를 준비합니다. 새해 계획을 세우노라면 자연스럽게 ‘희망’ ‘기쁨’ ‘설렘’ 같은 단어들이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그러나 2021년 새해를 생각하는 지금은 그런 단어들을 떠올리기가 어렵습니다. 올 초 빠르게 퍼지기 시작한 코로나19가 여전히 우리 삶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치료제와 백신 개발이 성공했다는 뉴스가 들려오지만 실제로 접종을 하기까지는 아직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합니다. 이런 가운데 다시 확진자들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은 다시 한 번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바이러스의 긴 그림자가 아직도 우리 삶을 덮고 있는 것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계속되면서 마주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엘리베이터나 버스, 지하철, 식당이나 카페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을 잠재적인 감염자 또는 전파자로 보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한센병 등 전염병이 퍼질 때 한 사회가 어쩔 수 없이 타인을 멀리하고 특별히 감염된 이들을 격리하는 상황이 자주 묘사되어 있습니다. ‘부정한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사랑하는 가족들과 떨어져서 살아야 했던 사람들, 부정하다고 해서 예수님 앞에도 나아오지 못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거듭해서 예수님이 이들을 전혀 거리낌 없이 만나주셨으며 이들의 병을 고쳐주셨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안타깝지만 때로는 격리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이 모든 어려운 상황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책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주님의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우리 모두에게 미치도록 기도하고 기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어 코로나19가 종식될 때까지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하며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바이러스로 인한 상황을 견뎌야 할지도 모릅니다. 마주치는 이들을 잠정적인 감염자와 전파자라고 여기는 태도는 코로나19를 지혜롭게 극복하는 방법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배려입니다. 상대방을 잠정적인 감염자와 전파자로 생각하기에 앞서 내가 먼저 방역 수칙을 지킴으로써 다른 이들을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불편하더라고 외출 시에는 꼭 마스크를 쓰는 것, 외출 후에는 언제나 손을 씻거나 세정제로 손을 닦는 것, 기침은 옷소매에 하는 것, 열이 나거나 기침이 나면 집에서 쉬며 외출을 자제하는 것. 남을 위해 나 먼저 불편을 감수하려고 하는 모습이야말로 코로나19를 극복하는 지혜로운 첫걸음입니다.
며칠 전 여의도순복음교회 대성전 앞 성탄 트리에 불을 밝히는 점등식 행사가 있었습니다. 성탄 트리에 불을 밝히면서 2000년 전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다시금 묵상했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시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셨던 예수님을 묵상하며 예수님이 보이셨던 희생이야말로 지금 한국사회에 정말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021년에는 우리가 행하는 희생, 양보, 배려를 통해 바이러스의 어둠 속에 갇힌 한국사회에 희망, 기쁨, 행복의 등이 환하게 밝혀지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