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1세와 그레고리 1세

교황(Pope)이란 말은 '아버지'란 의미를 갖는다. 원래 이 단어는 존경받는 교회의 주교(=감독)에게 사용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황제가 건재하던 동로마제국과는 달리 410년 로마가 침공당한 이후 로마교회의 주교가 시민들의 실질적인 정신적 지도자 역할을 하게 되면서 그 단어가 갖는 의미는 변질되어 갔다.

먼저 452년 훈족이 로마를 침략해올 때 로마를 구하고자 침략자들 앞에 나선 것은 당시 로마교회의 주교였던 레오였다. 그는 '하나님의 채찍'이라고 불리던 훈족의 지도자 아틸라와 그의 군대를 놀랍게도 담판을 통해 퇴각시킴으로써 전쟁과 약탈의 위기에서 로마를 구해냈으며 북아프리카 카르타고를 중심으로 반달 왕국을 일으킨(359년) 가이세리크가 군대를 이끌고 로마를 침략했을 당시에도(455년) 담판을 통해 피해를 최소한으로 막아냈다. 이러한 로마교회 주교의 활약은 그들을 시민들의 영적·정신적 지주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다.

레오가 죽은 지 정확히 15년 되는 해(476년) 서로마 제국은 게르만(왕-오도바카르)에 의해 무너졌다(8월 30일자 가족신문 교회사산책 참조). 서로마는 무정부 상태가 되었으나 게르만족과 동로마 황제(유스티니안)가 맺은 정치적인 관계로 인해 실상은 동로마 치하에 놓이게 되었다. 로마교회 역시 동로마 황제에게 예속되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지만 이 무렵 이민족의 로마 침공은 로마교회 주교의 권위를 오히려 강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랑고바르덴족의 침략(568년)으로 로마의 무질서와 혼란은 극에 달했다. 상하수도는 파괴되어 흑사병이 번졌고 이는 펠라기우스 2세의 생명마저 앗아갔다. 그 뒤를 이어 그레고리 1세가 로마교회의 주교에 임명되었다. 혼란과 죽음의 공포 앞에 내던져진 로마인들에게 그레고리는 희망을 주는 사람이었다. 부서진 사회시설들을 고치고 시민들에게 양식을 배급했다. 남부 이태리의 교황령을 개편하여 교회 관리직에 성직자를 임명하는 한편 평신도 관리인을 고용하여 전문적인 경영을 꾀했으며 동로마에 곡물을 수출하여 교회수입을 확충함으로써 기아와 기근에 대처했고 포로 해방에 앞장섰으며 병원 시설 등을 적극 지원했다. 무엇보다 랑고바르덴의 지속적인 침공에 맞서 적극적인 협상을 벌였고 로마시 부근의 평화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또한 그는 교회내의 잘못과 오류들을 적극적으로 시정했고 예배의식을 간소화하는 한편 성가를 직접 지어 보급함으로써 미사형식을 개혁시켰다. 이러한 조치는 그가 공적 예배를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레고리로 인하여 로마교회의 지위는 절대적인 자리가 되었다. 로마정부가 하던 일들을 교회가 수행하기 시작했으며 서방교회들은 강하게 로마교회에 결속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그로 하여금 로마 교구를 '모든 교회들의 으뜸이요 그 주교는 모든 교회를 책임지는 인물'이라고 목소리를 높일 수 있게 해주었다. 로마를 지키고 회복하는 일에 로마교회의 주교가 보여준 리더십은 세속적 통치자의 위치와 위엄을 가져다주었다. 로마교회의 주교는 사실상 중부 이태리의 세속적 군주였다.

김형건 목사(동작대교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