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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 시인의 “꽃” 중에서-

언제부턴가 뉴스나 언론 SNS상에서 익숙해진 표현이 있다. A모씨 K군 B양 등 이름 같지만 이름 같지 않은 익명의 표현들. 물론 숨겨야 할 이유가 있어 각종 이니셜을 사용했겠지만 이런 것을 보면 왠지 불편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이름은 사전적 의미로 ‘물건 사람 장소 생각 개념 등을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해 부르는 말’을 의미한다. 이름을 드러낸다는 것은 자기의식의 표출이다. 사실 현대 사회는 너무 많은 것이 노출돼 ‘정보 과잉’의 시대이다. ‘나’를 드러내고 노출하는 것에 피곤해졌고 ‘남’의 노출까지도 귀찮고 식상해졌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아마 이름을 숨기는 ‘익명’이라는 방식일 것이다. 군부독재시절 ‘익명’은 하나의 자기방어적 기재였다. 현시대의 ‘익명’도 그런 의미일까? 혹시 비겁함과 책임회피의 또 다른 이름은 아닐까? 익명은 마음껏 악플을 달고 허위사실을 유포하기 위한 자기 쾌락적 도구로 전락해 버렸다.
 보낸 사람이 그리운 이의 이름으로 씌어 있어 봉투를 뜯는 기다림조차 설레던 그 첫사랑의 편지들 같은 마음이 아쉽고 누군가에게 이름을 알려주고 그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불편하지 않은 그런 관계들이 그립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기사입력 : 2020.10.25. am 09:41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