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 위에 오신 하나님의 본체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7~8)
빌립보서는 바울이 감옥에 갇힌 중에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쓴 서신이다. 바울이 투옥의 고통을 몸소 느끼며 사랑하는 교회를 향해 기록한 빌립보서는 조개 속 진주와 같이 무척이나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바울의 연애편지
빌립보교회는 바울이 유럽에서 처음으로 개척한 교회로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세워졌다. 아슬아슬했던 바울의 빌립보 사역 이야기는 사도행전 16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바울은 낯선 유럽 땅에서 첫 번째로 세운 교회였던 빌립보교회를 특별히 사랑했던 것 같다. 빌립보서에는 빌립보교회를 향한 바울의 사랑이 곳곳에 등장한다(2:12, 4:1). 이 중에서도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1:8)는 바울의 표현은 무척이나 절절하고 의미심장하다.
빌립보서를 "바울의 따뜻한 감정이 표현된 가장 매력적인 서신"이라고 언급한 신약학자 레이몬드 브라운의 말에 공감이 된다.
빌립보서의 구조
빌립보서는 4장으로 구성된 짧은 서신이다. 그래서 구조 또한 비교적 단순하고 눈에 쉽게 들어온다.
1장 1절에서 11절에는 바울의 인사와 빌립보교회를 향한 기도가 나온다. 여기서 바울은 다른 서신에서처럼 빌립보교회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풍성하게 알고 열매 맺는 신앙생활을 하기를 바란다고 기도한다.
1장 12절에서 26절에는 빌립보서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내용이 등장한다. 이 부분의 내용을 보면 바울이 감옥에 갇힌 것을 모든 교인이 슬퍼하지는 않은 것 같다. 빌립보교회의 몇몇 교인은 바울의 투옥이 그의 비정통성과 무능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생각했다. 이들은 바울이 투옥된 틈을 타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경쟁심에 불타 이전보다 더 열심히 복음을 전했다. 바울은 이들의 행위를 탐탁지 않게 여기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이 전도를 열심히 하니 영혼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 아니냐며 아량을 보여주었다(1:18).
1장 27절에서 2장 18절에는 성경 전체에서도 매우 유명한 부분이 등장한다. 여기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겸손과 희생의 위대함을 이야기한다. '하나님의 본체'이셨으나 '종의 형체'를 지니시고 죽기까지 자신을 낮추신 예수님은 만물의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시다(2:6~11).
2장 19절부터 30절에서 바울은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를 빌립보교회에 보낼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에바브로디도에 주목해보자. 에바브로디도는 투옥 중인 바울을 도우라고 빌립보교회에서 보낸 도우미였다. 그런데 에바브로디도가 바울을 돕다 그만 병에 걸리는 바람에 빌립보로 돌아가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병에 걸릴 정도로 성실히 바울을 섬긴 에바브로디도의 모습이 감동적이다.
3장은 빌립보교회를 향한 바울의 경고와 권면이 나온다. 먼저 바울은 빌립보교회 교인들에게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받아야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따르지 말라고 경고한다. 더불어 스스로 온전하다고 생각하여 게을러지지 말고 늘 최선을 다해 믿음의 전진을 하라고 권면한다.
4장은 빌립보교회의 후원에 대한 바울의 감사와 몇몇 구체적인 가르침이 등장한다. 빌립보교회는 바울의 사역에 물질적인 도움을 준 교회였다. 바울은 이들에게 감사를 표했던 것이다. 갈등을 겪고 있는 여성 교인 둘을 바울이 일일이 호명하며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4:2)고 권면하는 구절이 매우 인상적이다.
빌립보서의 핵심 메시지
자족하는 일체의 비결
빌립보서를 쓸 때 바울은 감옥에 갇혀있었다. 그러나 그는 패배의식에 빠지거나 절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뻐하는 호연한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빌립보서를 '기쁨의 서신'이라 부르기도 한다.
바울이 이처럼 초연했던 이유는 예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신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면 비천함도 배고픔도 궁핍도 심지어 죽음도 그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4:11~13). 옥중에서도 기뻐하며 만족했던 바울은 오늘날 고통스러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말한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4:4).
겸손의 왕이 가신 길
세상에 이처럼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을까?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이 땅에 종으로 오셔서 사람들과 같이 지내시다가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섬기셨다는 감격스러운 사건은 2000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하나님은 목숨을 던져 희생하신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셨고 이제 모든 만물은 그 분을 만왕의 왕이라 찬양한다.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처럼 희생하고 섬겨야 할 것이다(2:5). 겸손의 왕을 본받는 자는 하나님이 높여주실 것이다.
완성과 미완성 사이
바울의 적대자는 크게 두 부류였다. 하나는 믿음만으로는 안 되며 율법을 지키고 할례까지 받아야 한다는 소위 '율법주의자' 다른 하나는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 받았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소위 '도덕폐기론자'다.
바울은 양쪽 모두에 동의하지 않는다. 대신에 바울은 균형 잡힌 신앙을 가질 것을 권한다. 우선 바울은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견해를 전적으로 반대하며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받는다고 역설한다(3:9). 그러나 믿음으로 구원받았다고 해서 끝난 것은 아니며 우리는 하나님의 온전함에 이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푯대를 향하여' '부르심의 상'을 위해 달려가라는 것이다(3:14).
<국제신학훈련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