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게르만 선교사 울필라

주후 410년 고트족 455년 반달족 476년 동고트족 568년 롬바르드족에 의해 연이어 국토를 유린 당한 로마는 사실상 회복할 힘을 상실했다. 자랑스럽던 전통, 강력했던 군대, 공교한 법과 행정 시스템도 무너졌다. 그러나 로마의 새로운 주인이 된 게르만족에겐 로마의 유구한 문명을 계승할 지혜나 기술이 없었다. 심지어 그들에겐 문자도 없던 상황이었다.

이들이 로마를 비롯한 제국 전역에 정착하면서 서부 유럽의 인종적 분위기가 변화되기 시작했다. 점차 정복자들은 원주민이었던 로마인들과 섞이며 로마의 문화를 신속하게 받아들였다. 그들은 특별히 기독교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무엇보다 야만족에 의해 수립된 나라이기에 약할 수밖에 없던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기독교 문화를 배우고 그 근본이 되는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지도층에서부터 기독교 전향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졌고 평민들도 뒤를 이어 개종의 대열에 참여했다. 결국 롬바르드족을 제외한 모든 게르만족이 기독교화 되었다.

게르만족의 기독교화에 큰 공헌을 한 인물이 울필라(또는 불필라, 311~383)였다. 그의 선조는 카파도키아에 살던 기독교인들이었다. 이들은 주후 257년 고트족에 의해 포로로 붙잡혀 가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 한 명이 고트족 남자와 결혼해서 낳은 아들이 울필라였다. 다시 말해 그의 아버지는 고트족이었으나 어머니는 기독교 로마인이었다. 고트인으로 자란 울필라는 헬라어와 라틴어에 능통하게 되었고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자연스럽게 많은 고트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콘스탄티노플의 주교였던 니코메디아의 유세비우스는 341년경 고트족의 선교를 위해 울필라를 사제로 서품했다. 고트족을 위한 최초의 선교사가 된 울필라는 도나우 지역에서 거주하던 고트족에게 복음을 증거했고 기독교는 급성장했다. 348년 게르만족 내에서 일어난 대대적인 기독교인 박해로 인해 울필라를 비롯한 고트족 그리스도인들은 다시 로마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는 이 기간에 고트족을 위해 성경(울필라역)을 번역했고 그들을 위한 여러 가지 예배 의식을 만들었다. 고트족을 위한 새로운 용어들이 고안됐고 기독교로 개종하는 게르만족들 가운데 널리 사용되었다.

흥미롭게도 울필라는 아리우스주의의 그룹에 속해 있었다. 381년 콘스탄티노플공의회에서 그는 아리우스주의가 이단으로 정죄당하지 않도록 노력하기도 했다. 비록 그의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으나 그 당시 의결된 결정들 가운데 ‘야만족들 가운데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는 (그 지역) 아버지들(교부들)이 치리하던 방식에 따라 경영되어야 한다(캐논2)’는 조항을 관철시켰고 이를 통해 아리우스주의가 고트족 및 반달족 가운데 초대신앙으로서 유지될 수 있었다.

383년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콘스탄티노플에 모든 기독교 종파를 소집하고 그들에게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앙고백에 서명하도록 했는데 울필라는 참석을 위해 그곳에 도착한 직후 사망했다.  

김형건 목사(동작대교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