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인류와 이스라엘의 역사가 기록된 역사책이다. 성경 한 구절은 한 개의 구절 이상의 의미와 역사적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배경을 함축하고 있다. 성경에 기록된 사건과 구절들을 넓은 시야로 혹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세하게 접근함으로써 성경 전체를 조금 더 잘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순복음가족신문은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기록한 성경구절의 행간을 풀어 성도들이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이단에 대한 정죄와 심판 '니골라당의 멸망'
'오직 네게(에베소교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계2:6)
셰익스피어의 희곡 중에 '끝이 좋으면 다 좋다'(All's Well That Ends Well)는 희곡이 있다. 시작보다는 끝이 좋기를 바라는 마음은 일반적인 바람이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으나 흙수저로 끝나기보다는 시작은 별 볼일이 없었어도 풍요롭고 성공적인 노년을 바라는 마음은 모두가 같을 것이다.
성경에는 시작은 미약했지만 나중은 심히 창대했던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선한 마음과 믿음의 열심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변질 되고 타락해 악한 결과를 낳은 사례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고자 만들기 시작했던 율례와 규례들이다. 초대교회에서도 신앙의 열심이 심하게 변질된 사례가 있었다.
니골라당(The Nicolaitanes)이 대표적인 예이다. 니골라당은 이단을 대표하는 집단으로서 신약성경에 두 번 언급(계 2:6, 계 2:15)되어 있다. 그러나 니골라당의 기원이 된 니골라는 스데반과 같이 초대 교회의 일곱 집사 중의 한 사람이었다.
1. 니골라와 초대교회 일곱 집사
초대교회는 스데반과 같은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행 6:3)들을 선별해 일곱 집사로 세웠다. 일곱 집사의 이름이 모두 헬라식 이름으로만 기록되어 있다. 헬라식 이름만 언급되었다고 해서 이들이 모두 헬라파 유대인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교회 내에서 어떤 차별이나 구분을 두지 않으려고 헬라식 이름으로만 기록했을 가능성이 높다.
일곱 집사들의 헬라식 이름보다 더 관심을 끄는 것은 사도행전 6장에 기록된 그들의 사역이다. 스데반과 빌립에 대한 기록은 일곱 집사들이 단순히 교회의 행정을 담당한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기독교 최초의 순교자가 된 스데반 집사의 사역은 사도행전 6장 8절부터 7장 전체에 걸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스데반의 헬라어 이름 '스테파논'은 경기에서 승리한 사람에게 씌워주는 '면류관'을 뜻하는 '스테파노스'에서 왔다. 스데반은 예수님의 제자들보다 먼저 기독교 역사의 첫 순교자가 되었고 이름처럼 고귀한 면류관을 쓰게 되었다.
이어 소개되고 있는 빌립 또한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했다(행 8:5). 그는 귀신을 쫓아내고 중풍병자와 걷지 못하는 사람을 고쳤으며(행 8:7)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고 침례를 베풀었다(행 8:26~38).
그러나 스데반과 빌립의 사역을 제외하면 다른 집사들은 이름을 언급하는 것에 그치고 있다. 그런데 비록 한 절도 안 되는 짧은 구절이지만 니골라에 대해서 부가적인 설명을 하고 있다. 니골라는 안디옥 출신의 헬라인이었으나 유대교에 입교하고 복음을 듣고 기독교인으로 개종한 사람이다(행 6:5).
2세기 교부들 중 이레니우스는 그의 저서 『Against Heresies』(이단에 대항하여)에서 일곱 집사 중의 한 명으로 기록된 니골라를 요한계시록 2장 15절의 '니골라당의 교훈'을 만든 사람으로 지목하고 있다. 이레니우스 주장은 터툴리안, 히폴리투스 등 초대 교회 교부들에게 받아들여졌다.물론 이 견해에 대한 신학적 논쟁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하지만 이레니우스(A.D. 130~202)는 아주 초창기 교부였고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시기와 이레니우스의 활동 기간이 시간적으로 많이 차이나지 않기 때문에 그의 주장을 쉽게 간과할 수 없다.
2. 니골라와 발람의 관계
요한계시록 2장 14~15절은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당의 교훈을 같은 선상에서 비난하고 있다. 발람은 민수기에 등장하는 인물이다(민 22:5). 시간적으로 보면 발람은 광야 시대의 사람이었고 니골라당은 초대교회 시대이다. 수천 년의 시간적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니골라당과 발람은 두 가지 유사성을 갖고 있다.
1) 언어적인 측면
니골라는 '이기다' '정복하다' '삼키다'는 뜻인 '니카오'와 '백성'이라는 뜻인 '라오스'의 합성어이다. 두 단어를 합친 니골라의 뜻은 '백성을 삼키다' '백성을 정복하다'는 뜻이다. 이 단어가 사람의 이름으로 쓰이면 '백성을 삼키는 자'가 된다. '발람' 또한 '삼키다'는 뜻인 히브리어 '빠알'과 '백성'을 뜻하는 '암'이 결합된 단어로 발람 또한 '백성을 삼키는 자'라는 뜻이 된다. 헬라어인 니골라와 히브리어인 발람의 뜻이 둘 다 '백성을 삼키는 자'이다.
2) 영적인 측면
니골라당과 발람은 영적인 측면에서도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다. 발람은 모압 왕 발락의 사주를 받고 이스라엘 공동체를 무너뜨리기 위해 3번이나 제사를 지냈다. 물론 발람이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한 것은 아니었다. 3번 모두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저주 대신 축복을 선포했다. 그러나 발람의 의도는 이스라엘 공동체를 저주하고 무너뜨리려는 것이었다.
니골라당의 가르침과 교훈 또한 초대교회 공동체의 믿음과 신앙을 무너뜨리려는 사탄의 도구가 되었다.
3. 영지주의와 니골라당의 교훈
영지주의는 여러 세대를 통해 여러 분파로 나뉘었으나 큰 틀에서 보면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극단적 금욕주의를 바탕으로 한 영지주의자이다. 이들은 영은 선하고 육체는 악하다고 생각했다. 악한 육체를 학대함으로 영혼이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 결과 극단적 금욕주의를 추구했다.
또 다른 부류는 쾌락주의에 빠진 영지주의자들이다. 이들은 기독교인은 율법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에 육체가 짓는 어떤 죄도 더 이상 구원과 상관없다고 가르쳤다. 이로 인해 성도들이 아무런 죄의식 없이 우상숭배와 성(性)적 쾌락주의에 쉽게 빠져들었으며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도덕적 성숙을 등한시 했다.
요한계시록 2장 6절이 니골라당의 '행위'를 지적하는 것으로 봐서는 니골라당이 쾌락주의적 영지주의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복음에서 벗어난 변질된 사상은 죄악의 길로 이끌고 갈 뿐만 아니라 영혼을 파괴하고 구원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니골라당의 가르침과 교훈은 오늘날의 신천지와 같이 독버섯처럼 초대 기독교 안으로 침투해 들어와 성도들의 믿음과 삶을 파괴했다.
성경은 이런 이단에 대한 정죄와 심판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니골라당이 멸망당한 것처럼 오늘날 일어난 이단들도 심판의 진노를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이상윤 목사(순복음홍콩신학교 학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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