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만민족의 대이동과 서로마제국의 멸망
중세교회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으로서 ‘게르만민족의 대이동’을 꼽을 수 있다. 게르만민족이란 약 기원전 8세기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거주하던 민족을 가리키는데, 이들은 점차 발트해 연안으로 남하하여 약 기원전 1세기에는 라인 강과 도나우 강을 경계로 로마 제국과 인접해 있었다. 반달족, 서고트족, 동고트족, 부르군트족, 프랑크족, 롬바르드족, 앵글로색슨족 등으로 구성되어 있던 당시 게르만족은 오늘날의 독일인은 물론 스웨덴인, 덴마크인, 노르웨이인, 아이슬란드인, 잉글랜드인, 네덜란드인 등의 근원이 되었다(따라서 게르만족이 독일인만을 지칭한다는 생각은 오해이다).
게르만족이 로마제국의 대적으로서 등장한 것은 주후 375년경이었다. 그무렵 아시아에서 동유럽으로 침입해 온 훈족(왕: 아틸라)의 진격으로 인해 게르만족 역시 유럽의 남쪽과 서쪽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고 로마제국과 충돌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당시 로마제국은 동로마(발렌스 황제)와 서로마(발렌티누스 황제)로 나뉘어 있었는데, 먼저 동로마제국이 제국의 국경을 침입한 서고트족(왕: 프리티게른)과 전면전을 치르게 되었다.
378년 봄 발렌스는 서방황제 그라티아누스의 지원 약속을 믿고 발칸 반도로 진군했다. 그러나 서로마제국의 지원군은 도착하지 않았고 아드리아노폴리스 근처의 마리차 강변에서 고트족과 전투를 벌이고 있던 로마군은 완패했다(378년). 발렌스 황제는 화살에 맞아 전사했고 로마군의 3분의 2가 궤멸했다. 후임으로 지명된 테오도시우스는(379년) 그라티아누스 황제가 사망한 후 로마제국을 통일시키고 기독교를 국교로 삼는 한편 고트족에게 정착할 수 있도록 도나우 강 남쪽 영지를 내주어 제국을 안정시켰다. 그러나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자신의 두 아들에게 제국을 다시 동서로 양분하여 맡긴 후 사망하자(395년) 서고트족은 자신들의 왕인 알라리크의 지휘를 받으며 약탈과 정복을 재개했다.
그들은 먼저 그리스(396년)를 점령한 후 이탈리아(401년 이래)로 진출했으며 결국 서로마제국의 수도(로마)를 무너뜨렸다(410년). 우리가 잘 아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거작 ‘신의 도성’은 이러한 배경에서 쓰여진 것인데, 그는 이 무서운 대재난을 그리스도교의 책임으로 돌리려고 하는 이교도들의 비난을 반박하면서 오히려 세상 가운데 하나님 없는 자들의 번영과 타락이 이같은 재난의 원인이며 오로지 ‘하나님의 도시’의 운명은 하나님 손에 있음을 역설했다.
425년부터 반달족이 스페인과 북아프리카를 점령했다. 훈족은 도나우 강을 거슬러 올라가 갈리아까지 전진했으며 452년 이탈리아 반도로 향했다. 당시 이탈리아에는 방어군이 전혀 없었는데 레오 주교가 훈족의 아틸라와 담판을 지어 로마를 지켜냈다. 하지만 그도 2년 후 반달족의 공격까지 막아낼 수는 없었다. 472년에는 리키메르가 이끄는 게르만 용병대에 의해서, 546년과 549년 토틸라가 이끄는 동고트족에 의해서 로마는 반복해서 침략당했다. 결국 게르만 군대가 476년 오도아케르를 서로마제국의 왕위에 올림으로써 제국의 서방 전체가 게르만족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김형건 목사(동작대교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