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인류와 이스라엘의 역사가 기록된 역사책이다. 성경 한 구절은 한 개의 구절 이상의 의미와 역사적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배경을 함축하고 있다. 성경에 기록된 사건과 구절들을 넓은 시야로 혹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세하게 접근함으로써 성경 전체를 조금 더 잘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순복음가족신문은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기록한 성경구절의 행간을 풀어 성도들이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베드로의 제자 된 마가, 사복음서 중 최초인 마가복음 기록
'택하심을 함께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벧전 5:13).
1. 두 번의 실패를 겪은 마가
부유한 집안에서 어려움 없이 자란 마가의 연약한 모습은 버가에서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마가복음 14장에는 로마 군인들에게 잡혀 끌려가시는 예수님과 그를 따라 가던 한 청년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 사건은 겟세마네 동산이 아닌 예루살렘성 안에서 무리들이 예수님을 대제사장에게 끌고 가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 청년은 밤에 집 밖에서 들리는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베 홑이불을 두르고 구경삼아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무리들에게 의심을 사게 되자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갔다(막 14:51~53).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 예수님의 모든 제자들은 이미 도망간 상태였으므로(막 14:50) 이 청년은 예수님의 12제자 중의 한 명은 아니다. 홑이불을 걸치고 있던 청년이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난 사건은 마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다. 마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고 제자들도 몰랐던 지극히 사적인 사건이기에 이 청년이 마가 자신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 청년이 마가였다면 그는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간 사건 외에 버가에서 다시 한 번 배신자의 뒷모습으로 바울과 바나바를 뒤로하고 예루살렘으로 되돌아 간 것이다.
2. 인생의 반전: 베드로의 제자가 된 마가
1) 구브로로 간 바나바와 마가
바나바는 바울과 심하게 다툰 후 더 이상 사역을 같이 하지 않게 되었다.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떠났고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행 15:39~41). 구브로는 터키와 시리아의 해안에서 약 100㎞정도 떨어져 있는 작은 섬으로 현재 지명은 휴양지로도 유명한 사이프러스(Cyprus)이다. 바나바가 바울과 헤어진 후 구브로로 간 이유는 두 가지였던 것 같다.
첫째, 구브로는 바나바가 태어나서 자란 고향이다(행 4:36). 자기가 태어나 자란 곳이기에 익숙하고 친근한 구브로를 선택했을 가능성이 있다. 또 다른 이유는 믿음의 형제들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스데반의 순교 이후 예루살렘에 몰아닥친 박해로 인해 초대 교회 성도들은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으로 흩어졌다(행 11:19).
디아스포라가 된 믿음의 형제들은 안디옥뿐만 아니라 구브로에도 교회를 세웠다. 구브로에 복음을 전한 사람은 예수님께서 다시 살리신 나사로였다. 스데반을 죽인 유대인은 예전부터 눈엣가시였던 나사로를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부활을 경험한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요 12:10~11).
나사로는 예루살렘의 박해를 피해 성도들과 함께 구브로에 왔다.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 산 증인이 된 나사로는 구브로에서 복음을 증거하다 죽음을 맞이했다. 구브로에는 기독교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두 교회가 세워져 있는데 사도들보다 먼저 구브로에서 복음을 증거한 나사로를 기념하기 위한 나사로기념교회와 바울과 헤어진 후 고향인 구브로로 돌아와 순교하기까지 복음을 전했던 바나바를 위한 바나바기념교회이다.
나사로기념 교회 지하에는 돌로 된 석관이 놓여 있다. 이 석관에는 어느 곳에도 보지 못한 단어 하나가 새겨져 있었다. 헬라어로 '필레오이', 즉 '친구'라는 단어이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친구라고 부르셨는데(요 11:11) 이것을 보고 나사로가 이곳에 묻혔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바나바기념교회 외관에 작은 교회가 있는데 그곳에 바나바의 무덤이 있다. 바나바는 A.D. 61년에 살라미스(Salamis)에서 순교했으며 터툴리안은 바나바가 히브리서를 기록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2) 베드로의 제자가 된 마가
바나바와 바울의 결별의 원인이 되었던 나약했던 마가는 베드로전서에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택하심을 함께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벧전 5:13). 베드로는 마가를 '내 아들 마가'라고 부른다. '내 아들'이라는 말은 바울이 디모데를 그렇게 불렀던 것처럼 '제자'를 의미한다. 마가는 시간이 흐른 뒤 베드로의 제자가 되었다.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었던 마가가 예수님의 행적을 소상히 마가복음에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베드로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삼촌인 바나바를 따라 구브로로 떠났던 마가가 어떻게 베드로의 제자가 되었을까? 아마도 바나바의 순교 이전 혹은 이후에 바나바에 의해 베드로에게 보내졌을 것이다.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면서 기독교 역사에서 배신의 아이콘이 됐던 베드로이다. 그런 그가 두 번의 결정적인 배신과 실패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었던 마가의 실수를 품어주며 흔쾌히 그의 제자로 받아 줬던 것 같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의 독자들에게 문안의 인사를 전하며 바벨론(로마) 교회와 마가의 관계를 보여준다(벧전 5:13). 베드로의 제자가 된 마가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사복음서 중에 최초로 기록된 복음서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마가복음을 기록하고 로마교회와 기독교인들에게 큰 영향력을 끼치는 영적지도자가 되었다.
3. 마가와 베네치아(Venezia)의 상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의 하나인 물의 도시 베네치아. 비발디의 고향으로 그의 화려하고 섬세하며 아름다운 선율만큼이나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선사하는 베네치아에 들어서면 산마르코성당(Basillica di San Marco)을 만나게 된다. 이 보석 같은 도시는 마가와 관련된 기독교 역사에 남을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산마르코성당에는 마가의 무덤이 있다. 그러나 마가는 그의 생애 동안 베네치아에 가 본 적이 없다. 마가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복음을 전하다 A.D.68년에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알렉산드리아에서는 마가의 순교를 통해 복음의 씨앗이 뿌려져 콥틱교도들을 통해 자라나고 있었다. 그러나 9세기 이슬람의 박해가 더욱 심해졌고 A.D. 828년 마가의 묘가 있던 교회가 흔적조차 없어질 위기에 처했다.

사라센의 칼리프는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궁전을 확장하려고 했다. 그런데 건축 자재가 부족하자 마가의 묘가 있던 이집트 교회의 대리석 기둥들을 가져다 쓰라고 명령했다. 교회는 무너지고 마가의 유골도 훼손이 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때 베네치아의 상인이었던 보노(Bono di Malamocco)와 루스티코(Rustico di Torcello)가 모슬렘이 싫어하는 돼지고기를 마가의 유골에 덮어 짐 검사를 피해 베네치아로 옮겨 왔다.
마가가 살아있을 때는 한 번도 와 본적이 없던 베네치아에서 이렇게 그의 유골은 안식을 얻게 되었다. 바울은 한 때 그를 배신하고 떠났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유익한 영적리더가 된 마가를 보기 간절히 원했다(딤후 4:11). 마가를 데리고 와 달라는 부탁은 이루지 못한 유언이 되었고 바울의 애절한 소망은 끝내 이 땅에서는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나 위대한 두 사도, 마가와 바울의 만남은 하나님의 나라 주님의 보좌 앞에서 이루어져 있다.
이상윤 목사(순복음홍콩신학교 학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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