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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16.바울의 유언 : 마가와 바울 I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인류와 이스라엘의 역사가 기록된 역사책이다. 성경 한 구절은 한 개의 구절 이상의 의미와 역사적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배경을 함축하고 있다. 성경에 기록된 사건과 구절들을 넓은 시야로 혹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세하게 접근함으로써 성경 전체를 조금 더 잘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순복음가족신문은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기록한 성경구절의 행간을 풀어 성도들이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바울과 함께 한 마가… 그리고 1차 선교여행의 실패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4:11)
 
바울의 서신서 중에 가장 늦게 기록된 서신은 디모데후서이다.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디모데후서가 A.D.67~68년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바울의 유언과 같은 말들과 에베소에서 목회하고 있던 디모데를 향한 당부의 말들이 기록되어 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 두 번 로마에서 갇힌 적이 있다. 첫 번째 갇혔을 때는 가택연금 상태였다. 비록 집 밖을 나갈 수는 없었지만 자유롭게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행 28:30).

 하지만 디모데후서를 기록할 때인 두 번째 투옥은 첫 번째와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디모데후서 1장 16절에서 '내가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라고 기록하고 있듯이 바울은 사슬에 매여 있는 상태였다. 디모데후서 4장 6절은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바울은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세 가지 개인적인 부탁을 한다. 하나는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두고 온 겉옷을 가지고 와 달라는 것이고 둘째는 가죽 종이에 쓴 책을 가져다 달라는 것이었다(딤후 4:13). 겉옷을 가져와 달라는 부탁을 하면서 디모데에게 겨울 전에 로마로 와달라고 당부한다(딤후 4:21). 이것으로 로마 지하감옥의 추위를 견뎌야 했던 노(老)사도의 수감생활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할 수 있다. '가죽 종이에 쓴 책'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신학적 논쟁이 있다. 그가 법정에서 제시하고자 한 로마시민권이라는 해석과 구약 성경 중의 한 부분을 말하는 것이라는 견해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탁한 것이 '마가'를 데리고 와 달라는 것이다(딤후 4:11). 마가는 바울과 바나바가 격한 논쟁 후 갈라서게 된 원인을 제공했던 사람이다.

 바울은 1차 선교여행 도중 중도 하차한 마가를 2차 선교여행에 데리고 가는 것에 대해 반대했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가기 원했다(행 15:37~40). 이 일로 두 사람은 큰 말다툼을 하게 되었고 결국 서로 헤어져 다른 사역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헤어졌던 마가를 바울은 죽음을 앞두고 다시 보고 싶어 했다. 마가와 바울의 재회가 실제로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디모데가 마가를 데리고 로마에 도착했을 때 바울은 이미 순교했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

 바울이 마가를 애타게 찾았던 이유에 대해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사역 초기에 마가의 실수와 연약함을 받아주지 못하고 내쳤었지만 죽음을 앞두고 그와 다시 화해하기 원했던 개인적인 이유 때문일 것이다. 둘째, 로마에서 바울이 이루지 못한 사역을 부탁하기 위한 공적인 이유이다. 바울은 마가를 '나(바울)의 일에 유익한 자'라고 말한다(딤후 4:11). 바나바와 결별할 때 이후 보지 못했던 마가는 세월이 지나 바울의 사역에 '유익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1차 선교여행에서 중도 포기했었지만 마가는 마가복음을 기록하는 위대한 사도로 성장해 있었다. 마가복음은 4복음서 중에 이방인이었고 기독교를 박해했던 로마인들을 위해 기록된 복음서이다. 초대 교회 당시 로마인들이 읽고 복음을 받아들였던 복음서는 마가복음이었다.
   
1. 마가와 바울의 만남
성경에서 '마가'를 소개할 때 종종 쓰이는 표현이 '마가라 하는 요한'이다. 간단히 말하면 '마가'는 로마식 이름이고 '요한'은 유대식 이름이다. 로마의 식민지였던 유대인들은 로마식 이름과 유대식 이름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 베드로 또한 '시몬'이라는 유대식 이름과 '베드로'라는 로마식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흔히 바울이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사울, 즉 '큰 자'였는데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에 바울(작은 자)로 바꿨다고 이해하고 있으나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사울'의 뜻은 '큰 자'가 아니라 '찾다' '구하다'라는 뜻이다. 사울은 바울의 유대식 이름이고 바울은 로마식 이름일 뿐이다.
 마가와 바울의 만남은 바나바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골로새서 4장 10절은 마가를 바나바의 생질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생질'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아넵시오스'는 '조카' '사촌'이라는 뜻이다. 바울과 부조하는 일을 마치고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돌아올 때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온다(행 12:25). 바울과 마가의 직접적인 인연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2. 부잣집 아들 마가의 1차 선교여행 실패
마가의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사도행전 12장 12절이다. 사도행전 12장 12절은 마가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보다는 그의 어머니와 그곳에 모인 성도들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흔히 '마가의 다락방'이라고 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마가의 다락방'이라기보다는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이다. 이곳에서 120여 명의 성도들이 오순절날 성령을 받았다(행 2:1~4).

 그 당시 정치 문화 경제의 중심지였던 예루살렘에 120명 정도가 들어갈 집을 소유했다는 것은 마가의 집안이 부유했던 것을 의미한다. 이 집은 기독교 주춧돌이 되었으며 역사적인 장소가 되었다. 예수님께서 이곳에서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누셨으며(막 14:14~15)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있은 후 기독교 최초의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로 사용되었다. 기적적으로 감옥 문이 열리고 성령에 이끌리어 밖으로 나온 베드로가 찾아간 곳도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이었다(행 12:6~16).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렸을 때 로데라 하는 여자 아이가 문을 열고 그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 봤을 만큼(행 12:13) 그곳에서 교제와 예배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마가의 다락방은 기독교인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에게도 중요한 장소이다. 아래층에는 다윗왕의 가묘가 있다. 많은 유대인들이 마가의 다락방을 스쳐 지나 계단을 통해 다윗의 묘를 찾아 내려간다. 물론 예수님 당시부터 혹은 다윗의 사후부터 다윗의 무덤이 마가의 다락방 아래층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12세기 십자군 전쟁 때 예루살렘을 탈환한 후 이곳을 다윗의 무덤으로 지정하게 되었다. 부유했던 가정에서 태어난 마가가 그의 삼촌 바나바와 바울을 따라 1차 선교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바울을 비롯해 초대 교회 시대 복음을 증거했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전도자의 지침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마태복음 10장 9~10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마가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부족함을 모르고 살았다. 그런 그가 선교비나 여행에 필요한 짐, 심지어는 두 벌 옷이나 신발 지팡이도 없이 고된 선교 여정을 이어가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마가는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된다(행 13:13~14). 이 사건은 기독교 역사에 새로운 파장을 일으키게 된다.
이상윤 목사(순복음홍콩신학교 학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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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7.19. am 09:48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