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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유대인이야기②

새로운 나라를 꿈꾸다 - 유대 국가론을 펼친 테오도르 헤르츨

이스라엘 현대 국가의 탄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을 떠올린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벤구리온 수상을 떠올린다. 하지만 역사를 공부한 나로서는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테오도르 헤르츨이란 인물이다. 그는 시온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그가 시온주의 자체를 만든 것은 아니지만 최초로 흩어져 있던 시온주의라는 사상을 하나의 이념으로서 묶어낸 사람이기 때문이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유럽에서 일어난 반유대주의는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유럽에 정착해서 오래 살아온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유럽인이라 생각하며 반유대주의에 대해서 큰 위협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당시 많은 유대인들이 유럽 사회에서 영향력을 가진 사람으로서 활동하고 있었다. 정신분석학의 융과 프로이드, 물리학의 마리 퀴리와 아인슈타인, 음악에서의 슈베르트와 쇼팽, 철학의 스피노자 등 유수의 학자들과 작가들이 유럽 사회에서 인정받고 있었다.

1860년에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헤르츨은 유대교 가정에서 자랐지만 유럽 문화에 더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는 저널리스트가 되기 위해서 대학에 들어갔고 헝가리에서 독일어 신문사 기자로 일하게 된다. 그는 당시 유대인들의 시온향(시온에 대한 향수)이나 시온주의와 같은 망상을 철저히 배재하고 유럽인이 되어야 한다는 동화주의자였다.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을 뒤로 하고 유럽의 일원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그의 생각이 뒤바뀌는 사건이 발생한다. 1894년 프랑스에서 일어난 드레퓌스 사건이다. 이 사건은 프랑스 장교가 적국에 정보를 넘겼다면서 고발된 사건으로 드레퓌스라는 유대인 출신의 장교가 주모자로 지목됐다. 문제는 이 사건의 당사자는 오히려 프랑스 군의 상위 계급이었고 드레퓌스는 유대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누명을 쓰게 된 것이었다.

이 사건을 취재하던 헤르츨은 처음에는 이런 사실을 믿지 못했다. 하지만 점점 사건이 밝혀지면서 프랑스 유대인들이 당하던 부조리함이 사회적 문제가 아니라 인종적 차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사건과 함께 유대인들이 유럽에서 당하는 부당함에 대한 사건들을 더 파헤치게 된다. 저널리스트를 꿈꾸어 오던 그는 왜 유대인들은 박해를 받고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해야 그 박해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글을 쓰게 된다. 그는 결국 유대인들이 온전하게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들만의 국가를 세울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 결론을 바탕으로 하나의 책을 쓰게 된다. 그것이 유대국가론이었다. 이 책은 유대인들의 고난의 역사와 함께 유럽의 역사와 국가 성립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유대 국가 설립의 정당성과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당시 유대인들은 박해는 언제나 존재해왔다고 여겼고 국가의 설립은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헤르츨이 제일 먼저 한 것이 각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유대인들의 회당과 모임을 찾아가 자신의 이상과 비전을 전달하는 것이었다. 반대도 많았고 쫓겨나는 일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확신에 차서 더 열심히 자신의 이상과 비전을 알렸고 모든 시온주의 단체들을 찾아가서 함께 할 것을 설득했다.

1897년 8월 헤르츨은 최초로 세계시온주의회의를 스위스의 바젤에서 개최하게 된다. 이 회의는 나중에 세계시온주의협회가 되어 이스라엘 국가건설과 유대인들을 돕는 최전선에서 활동하게 된다.  이스라엘의 초대 수상인 벤구리온은 이 단체의 수장이 되어 이스라엘 독립을 이루게 된다.

헤르츨은 책으로만 말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비전을 들고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유럽의 정상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였다. 영국 대사 독일의 황제를 비롯해 당시 이스라엘 영토를 다스리던 오토만 황제를 만나서 유대 국가 설립을 도와달라고 요청하기도 하였다.

한참 유대 국가를 설립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던 헤르츨은 1898년 텔아비브를 방문하게 된다. 지중해가 보이는 텔아비브의 바닷가에서 그는 에스겔서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된다. 에스겔이 환상 가운데서 보았던 아름다운 바닷가의 풍경이 그의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시대에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알았다. 하지만 비전은 반드시 힘을 얻어 더 멀리 나갈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1904년 국가의 설립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하지만 그는 꿈을 남기고 갔다. 헤르츨 이후 그의 유산을 물려받은 많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 초대 수상인 벤구리온이었다. 1948년 벤구리온은 헤르츨의 소망대로 팔레스타인 영국령인 지금의 이스라엘에 국가를 설립하고 유대 국가의 독립을 세상에 알리게 된다.

헤르츨은 벤구리온이나 다른 유대인들처럼 유명하지는 않다. 그러나 그의 영향력은 지금의 이스라엘을 이루는 가장 큰 근본이 되었다. 차별이 아닌 평등함과 공평함을 꿈꾸었던 그의 비전은 지금도 여전히 유대인들의 가슴속에 남아있다.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모두가 안전하게 자유롭게 그들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곳. 남을 억압하거나 배제하는 사회가 아니라 모든 이들을 포용하고 품어주는 사회. 이스라엘은 지금도 그 꿈을 향해서 주위의 박해와 방해에도 꿋꿋하게 이겨내고 조금씩 전진해 가고 있다.


김요셉 목사

 

기사입력 : 2020.06.21. am 10:19 (입력)
김요셉 목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