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세종대왕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 세종대왕과 우리나라의 말인 한글의 탄생이야기는 한국 사람이라면 아주 잘 아는 이야기이다. 이와 같이 히브리어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Eliezer Ben-Yehuda 1858~1922)이다. 이스라엘의 공식 언어는 히브리어와 아랍어이다. 아랍어는 약 11억 명이 사용하는 언어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공식 언어인 히브리어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다. 히브리어라고 한다면 성서의 언어라고만 알뿐 배워 본 적도 들어 본 적도 없는 이들이 많다. 히브리어는 언제부터 사용되기 시작했을까? 히브리어가 현대 이스라엘의 공식 언어가 된 것은 100년이 채 안 된다. 이스라엘이 독립하면서 히브리어를 공식 언어로 사용하게 되었지만 그 이전에는 히브리어는 공식적인 언어가 아니었다.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이 멸망한 후 유대인들은 나라 없이 세계를 떠돌게 되었고 각자가 다른 나라에서 살기 시작했다.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던 것은 유대교의 전통이며 그 유대교의 전통은 히브리어로 된 토라(모세오경)와 타낙(구약성경)을 통해서 이어져 갔다. 그래서 이런 히브리어를 유대인들의 공용어로 만드는 일을 한 이가 바로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이다.

그는 지금의 벨라루스에서 태어났다. 전통적인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다섯살 때부터 토라와 미쉬나, 탈무드와 같은 전통 유대교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의 어머니와 삼촌은 그가 랍비가 되기를 원했고 그를 예시바(유대 신학교)에 보냈다. 그때 그는 처음으로 유대 계몽주의를 만나게 된다. 당시 유대인들 중에 깨어 있던 사람들이 유대문학을 이끌어내고 확장을 시도하며 유대문학의 중흥기를 열어가고 있었다. 그는 그런 시대에 히브리어로 된 신문과 책을 읽으면서 히브리어가 가진 아름다움과 표현성에 감동을 받았다.
그러나 아직 그 시대의 많은 유대인들은 그런 히브리어의 사용을 세속적인 것이라면서 실생활에서 쓰지 않았고 종교인들은 히브리어를 종교적인 용도로만 사용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벤 예후다는 히브리어로 된 신문과 글들을 통해서 그 당시 유행하던 시온주의에 대해서 알게 되었으며 이스라엘 땅에서 히브리어를 사용하며 사는 것이 유대인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후 프랑스에서 유학을 하면서 중동학과 정치학을 공부하며 만난 유대인 친구들과 히브리어로 대화를 하면서 이 생각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벤 예후다는 1881년 오스만제국 통치하에 있던 예루살렘에 정착을 하게 된다. 그는 이스라엘로 오면서 그의 이름을 엘리에제르 벤 펄만에서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로 개명한다. 당시 그 땅에 살고 있는 수많은 유대인들이 저마다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거나 이디쉬(독일어를 차용한 유대인들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그는 모든 이들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언어로서의 히브리어를 만드는 작업을 생각하게 되었다. 히브리어의 재발견과 부흥이야말로 시오니즘과 같이 유대인들을 고향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했다.
엘리에제르의 평생 숙원 사업은 사전의 편찬이었다. 지금까지 사용되어온 히브리어를 정리하고 그 뜻을 달아주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말들을 채워 넣는 일이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엘리에제르는 집에서든 밖에서든 반드시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엘리에제르는 그 당시 예루살렘 사회에서도 괴짜처럼 취급 받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히브리어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엘리에제르는 사전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결핵으로 죽게 된다. 하지만 그의 사망 이후 더 이상 진전이 없을 것 같던 사전의 작업은 아내와 아들들에 의해서 완성되고 히브리어는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과 함께 공용어로서 사용하게 된다.
이스라엘의 키부츠와 학교에는 울판(Ulpan)이라는 히브리어 언어코스가 있다. 이 코스에는 세계각지에서 온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참여해 히브리어를 배우고 있다. 수많은 유대인들이 각자가 살아왔던 곳에서의 언어가 아닌 이제 살아갈 곳의 언어를 배운다. 그들은 이제 자신들의 언어로 된 성경을 읽고 쓰고 말할 수 있고 그들은 일상 가운데서 성서의 언어를 말하고 서로 나누고 있다.
죽었다고 생각되었던 언어, 사람들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언어가 다시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그 언어가 가진 아름다움과 가능성을 바라본 한사람의 평생의 노력 때문이었다. 그의 유대인들을 향한 사랑과 꿈이 지금의 이스라엘 땅에서 읽고 듣게 되는 놀라운 역사를 이뤄낸 것이다.
필자도 히브리어를 배우는 중이다. 그리고 매일 아침마다 히브리어로 말씀을 한 구절씩 소리 내어 읽는다. 광야를 거닐면서 다윗의 시편을 히브리어로 읽고 묵상한다. 어쩌면 우리에게 결코 다가오지 않았을 수도 있었던 성서의 원래 언어를 다시금 읽을 수 있게 된 것은 벤 예후다 덕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김요셉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