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떨어지는 속도를 아세요? 초속 5㎝랍니다. 한 시간으로 치면 180�訶� 움직이는 속도예요. 어느 영화에선 이 속도가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서로에게 다가가는 속도라고 합니다.”
누군가의 속삭임을 들으며 문득 속도와 거리의 관계가 떠올랐다. 속도가 빠를수록 거리는 가까워진다. 빠른 만큼 목적지까지의 거리도 가깝다. 걸어서 가는 속도보다 자전거를 타고 가면 더 빨리 닿고, 자동차를 타면 더 빨리 도착한다. 그만큼 더 가깝다. 옛 사람들이 생각하는 서울과 부산의 거리보다 우리들이 생각하는 서울과 부산의 거리는 훨씬 가깝다. 그만큼 우리는 빠른 세상에서 거리 없이 살고 있다.
그런데 코로나19 이후 세계는 모두 감염을 막기 위해 거리 두기를 요구한다. 어쩔 수 없이 양팔을 벌려 닿을 만큼의 거리를 확보해야만 한다. 코로나19의 속셈은 뭘까? 거리를 두도록 요구하면서 은근히 우리의 속도에 딴지를 거는 건 아닐까. 너무 빨라! 그리고 그 멀어진 거리를 텅 비움으로써 감염을 차단하는 생활이 코로나19 이후의 새로운 일상이라 규정한다. 뭔가 큰 불편함이 기다리는 느낌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니 중요한 게 하나 빠졌지 싶다.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로 천천히 서로를 향해 나아가는 만큼 그 떨어진 거리를 ‘만남의 간절함’으로 채우라는 걸 놓치고 있는 것 같다. 간절함이란 곧 기도이다. 사람이 채울 수 없는 공간, 거기에 하나님의 기적과 섭리가 자리하는 법이고 보면 이제 코로나19 이후의 뉴노멀은 멀어진 거리마다 하나님을 바라는 마음으로 충만히 채우라는 큰 뜻도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