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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문학관, 아름다운 시(詩)가 있는 곳


식민지 압제에 ‘별헤는 밤’ ‘자화상’ ‘십자가’ 등 수많은 한글 시 써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고 치르다 만 27세 젊은 나이에 별이 된 시인  
 
하늘과 바람과 별이 함께하는 곳, 서울 종로구 창의문로에 위치한 윤동주 문학관. 3.1절을 앞두고 그곳에서 민족시인 윤동주의 순결한 정신을 반추해본다. 일제강점기에 한글로 시를 쓰며 일제에 맞선 윤동주 시인은 연희전문학교 문과 재학시절 인왕산에 올라 시정을 다듬으며 ‘별 헤는 밤’ ‘자화상’ ‘또 다른 고향’ 등 우리의 교과서에도 실린 수많은 대표작들을 지었다. 이러한 인연으로 종로구는 2012년 인왕산 자락에 버려져있던 청운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해 윤동주문학관을 만들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먼저 시인채(제1전시실)를 마주하게 된다. 9개의 전시대에는 윤동주 시인의 일생이 시간 순서대로 배열돼 있고 친필원고도 함께 전시돼 있다.

 윤동주(1917~1945) 시인은 간도에서 태어났다. 1899년 김양연 목사를 비롯해 독립운동가들이 두만강 건너 북간도에 명동촌(조선을 밝힌다)을 세우고 독립운동의 본거지로 삼았는데 윤동주는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명동촌에는 개신교 신자가 많았다. 윤동주 시인의 외삼촌이 목사였고 문익환 목사도 이곳에서 윤동주 시인과 함께 자랐다. 그래서인지 윤동주의 시 ‘십자가’에서 크리스천으로서의 그의 순교정신을 엿볼 수 있다. 그의 삶의 목적은 십자가였다. 어두운 현실상황에서 무기력한 자신이지만 상황이 주어진다면 언제든 예수 그리스도처럼 순교할 것이라고 그는 시를 통해 이야기한다. 실제로 윤동주 시인은 삶의 마지막을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보냈다.

 윤동주 시인의 시에는 자기과시가 없다. 민족을 위한 생각만이 오롯이 담겨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유고시집은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으로 번역돼 전 세계에서 애송되고 있다. 시인채에는 윤동주 시인이 소장했던 책이 전시돼 있는데 그는 소장책들 안에 날짜와 서명을 꼭 표기해놓는 꼼꼼한 성격이었다. 시인채를 지나면 열린우물(제2전시실)이 나온다. 폐기된 물탱크 윗면을 개방해 만든 중정인데 물의 흔적이 그대로 남은 폐쇄된 공간에서 왠지 어둡고 쓸쓸한 느낌이 난다. 바로 이어진 닫힌우물(제3전시실)은 침묵과 사색의 공간으로 시인의 일생과 시세계를 담은 영상물을 방영하고 있다. 이 공간들을 통해 민족의 독립을 소망하며 감옥에서 쓸쓸히 죽은 시인의 아픔과 외로움을 느껴볼 수 있다. 전시관을 나오면 건물 왼편에는 시인의 언덕으로 향하는 계단이 있다. 굴곡진 산길을 타고 오르면 한가로운 산책로가 펼쳐지고 윤동주 시인의 시가 적혀진 글 앞에 서게 된다. 글로써 독립운동을 하다가 만 27세 젊은 나이에 옥에서 숨진 시인 윤동주. 비장해서 눈물겹고 그래서 더 아름다운 그의 시를 감상해보자.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
정기휴관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추석 당일  

 

기사입력 : 2020.02.23. am 10:34 (입력)
김주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