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하의 날씨 12월 초록빛 숲은 갈색으로 변하고 어둠으로 짙어만 간다. 강가나 늪에는 갈대와 부들이 있고 들녘에서 키 큰 억새가 은빛 흰 머리카락을 바람에 나부끼며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는 황량한 때이다. 그러나 이들은 늦가을의 된서리를 맞고도 구부러지거나 휘지 않고 꼿꼿한 자태로 남아 바람 따라 흔들릴 뿐이다. 바람에 춤추듯 일렁이는 갈대와 억새를 보기위해 먼 곳도 개의치 않고 관광객이 모여든다. 모진 북풍한설에도 흰머리 날리며 강풍에도 탄력성을 유지하며 결코 부러지거나 부서지지도 않는다.
갈대는 벼과 식물로 키가 2~3m 정도로 크게 자란다. 갈대는 가을 잎을 가진 대나무와 같아서 ‘갈대’ 인가보다. 고대부터 인류는 갈대를 엮어서 움막이나 집 울타리로 세웠다. 흙벽돌을 만들 때 볏짚 대신 잘라 흙에 넣어 흙덩이가 부서지는 것을 보완했으며 초가지붕을 덮는 이엉의 재료로도 사용했다. 또한 촘촘히 엮어 방바닥에 깔아서 방안의 습기와 냉기를 막는 쿠션 역할을 했다. 그 외에도 갈대는 다양한 생활용품의 재료로 사용됐다. 출애굽기의 아기 모세는 역청을 발라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만든 갈대상자에 담겨서 나일 강가 갈대숲에 버려질 때 구원의 손길이 갈대상자에게 이르러 그의 생명을 건졌다(출 2:2~5). 갈대는 곧게 자란 것을 골라서 측량을 위한 용도로도 사용됐다. 그러므로 당시 부식되거나 녹슬지 않는 정확한 측정자를 황금갈대 자로 표현했다(계 21:15~17).
갈대는 얕은 강가나 호숫가 습지를 좋아한다. 전남 순천만 하구 늪지에 발달한 갈대숲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갈대는 겨울이 되면 잎과 줄기가 냉해를 입어 죽지만 땅속줄기인 뿌리는 살아서 다음해 봄을 기약한다. 주로 줄기뿌리로 빠르게 번식하는 갈대는 큰 군락을 이루어 순식간에 습지를 갈대숲으로 변신시키는데 알고 보면 모든 개체가 같은 유전자를 가진 하나이다. 단순한 여러해살이 풀 같아도 그 뿌리줄기의 수명은 성장 조건만 잘 갖춰지면 수백 년에서 천 년도 살 수 있다. 그러므로 한번 증식하여 만들어진 갈대 군락지는 여간하여 없어지지 않는다.
주로 물의 흐름이 낮거나 정체된 낮은 습지에서 잘 자라고 번식하는 갈대는 긍정적으로 본다면 갑자기 홍수로 인해 물이 범람할 때 토지의 침식과 유실을 막고 평소에는 수질을 정화시켜 좋은 생태습지를 보존한다. 이런 곳은 다양한 동식물이 모여 아름다운 생태계를 이뤄 살기 좋은 환경으로 바뀌게 된다. 한편 비슷한 종류이지만 산이나 들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억새이다. 한라산 산굼부리를 배경으로 가을에 드넓게 펼쳐진 황금빛 억새는 큰 군락지를 이루며 산등선을 가득 채운다. 요즘은 도시의 정원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사진). 이렇듯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시어 곳곳을 빈틈없이 아름다운 생명체로 채워 번성하게 하셨다(창 1:20~30).
윤철종(이학박사·고촌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