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농촌에서나 볼 수 있던 박과식물을 도시의 공원이나 정원에서 관상용으로 키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가을 초가집 지붕위에 덩그러니 달려 있는 큰 박은 볼 수 없지만 울타리에 달려 있는 작은 표주박용 조롱박(사진)은 이제 쉽게 볼 수 있다. 박은 종류가 다양해서 크기와 모양도 제각기 다르다. ‘박’이란 외마디 뒤에 작음이나 아기를 뜻하는 ‘아지’를 붙여서 박아지라고 불렀으나 발음하는 대로 적다보니 이제는 바가지가 됐다. 박은 나물로 먹는 식용이 되기도 하지만 그 껍질이 단단하고 치밀해서 박을 생활용품의 용기로 사용해 왔다. 가을에 잘 익은 박을 따서 원하는 용도로 잘라서 그 속을 파내고 1시간 전후 끓는 물에 삶은 후 그늘에 잘 말리면 바가지가 된다.
바가지는 플라스틱 제품이 나오기 전까지는 일상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주요한 용기였다. 지금은 다양한 각종 재질의 용기가 많아서 그 수요를 대체함으로 관상용으로 정원이나 공원에 심겨진 박과식물이 되었지만, 요즘도 각종 공예품이나 장신구로 활용된다.
오랫동안 우리의 생활 속에 밀접한 관계를 맺어 온 바가지는 수많은 세월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예를 들면 터무니없이 비싼 요금은 ‘바가지 요금’, 모르고 너무 비싸게 구입했을 때는 ‘바가지 썼다’, 아내의 잔소리를 남편은 ‘바가지 긁는다’라고 표현한다. 많은 수고와 번거로운 일을 당할 때는 ‘고생바가지’, 사리분별이 없이 처신하는 사람을 ‘주책바가지’라고 한다.
한편 역사 속의 큰 인물이 우물가에서 인연을 맺는 이야기에는 대부분 목마름을 해소할 수 있도록 우물을 퍼 올려야 할 두레박과 물을 퍼 담을 수 있는 바가지가 등장한다. 이것은 성경에서도 찾을 수 있다(창 24장). 우물가에서 물을 떠 주는 작은 바가지는 표주박이다.
심히 목마른 낯선 사람에게 건네주던 물그릇인 표주박에 버들잎을 띄운 것은 물을 급하게 마시다 사래가 들릴 것을 예방하는 아낙네의 지혜와 배려이다.
흥부전에 나오는 제비가 물어다 준 박 씨앗은 선행을 통한 보상으로 복을 상징했다. 이렇듯 예상치 못한 일이 잘 되었을 때 ‘대박 터졌다’로, 계획이 틀어지고 실패를 했을 때 ‘쪽박 났다’는 표현도 재미있다.
바가지는 비록 크기가 달라도 곡물을 담아 계량화한 되나 말처럼도 사용됐다. 크게 한 바가지 퍼 주었다 함은 마음에 넉넉함이요 돌봄의 기준이 됐다. 시대가 변해도 바가지의 긍정적인 의미는 넉넉한 인심과 배려로 쓰인다.
윤철종 (이학박사·고촌순복음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