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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남지 않은 올 한해… 예수님의 사랑으로 배려하고 이해하자

사람의 마음을 열어주는 것은 논쟁이 아니라 아름다운 꽃 한송이

주일 아침, 카카오톡 친구들 단체대화방에 한 녀석이 사진을 띄웠습니다. 탐스럽게 익은 홍시, 하얀 코스모스 그리고 이름 모르는 분홍색 꽃들 사진입니다. '올해 마지막 꽃들'이라고 한마디 덧붙입니다. 예배 드리러 가는 길에 사진을 확인하고는 저도 답장을 써줍니다. "길가에 핀 가을 꽃 보고 친구들 생각해 사진 찍어 보내준 니 마음도 꽃처럼 예쁘다."

 지난 두 달간 참 큰 다툼이 있었습니다. 정치적인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에서 서로 반목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단체 대화방에선 아예 정치와 관련된 얘기는 금지어가 되기도 했습니다. 저도 뭔가 말을 하려다 관두기도 했습니다. 왠지 서로 서운해지고 조심스러워진 것 같아 조금 씁쓸했습니다. 가을바람이 선선해질 무렵 친구가 보내준 꽃 사진이 유난히 더 고마웠던 이유입니다. 꽃과 열매를 찍은 사진이 상처 난 마음에 연고를 발라주는 듯 했습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꽃 산 나무 이런 사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등산길에 휴대폰을 꺼내 바위와 나무와 꽃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모습이 참 고리타분하다 생각했습니다. 예전 싸이월드 시절부터 그랬습니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비싸고 화려한 음식 먹는 사진, 카페에서 음료와 빵 찍은 사진을 올리는 사람을 보면 허세를 부리는 것 같았습니다. 대신 저는 블로그나 페이스북으로 사회 현안을 날카롭게 파헤치는 주장, 남들이 생각 못했던 촌철살인의 시각을 소개하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좋아요'를 많이 눌러주면 제 자신이 남들보다 조금 더 앞서가고 뛰어난 것 같은 착각에 빠졌습니다. 소셜미디어는 자유로운 공론의 장이 되어 가장 좋은 의견으로 사람들의 생각을 모아주리라 기대했습니다.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습니다. 논쟁이 벌어지면 사람들은 깊이 생각해보기 전에 쉽게 찬성이냐 반대냐 입장부터 정했습니다. 일단 자기 입장을 정하고 나면 다른 편의 주장을 경청하기보다 성급하게 반박하고 비웃기 일쑤였습니다. 특히 정치적인 주제로 논쟁을 하면 모두 교회를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들인데도 서로 손가락질하고 비난을 퍼붓곤 했습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생각이 같은 사람들끼리만 서로 '좋아요''멋져요'를 누르다보니,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기는 갈수록 어려워졌습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되었지만 오히려 더 고립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어차피 논쟁을 해봐야 끼리끼리 모여서 '좋아요'를 누르는 걸로 끝날 거라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재미난 영상이나 노래, 자연을 찍은 사진를 공유하는 편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현실을 외면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을 열어주는 것은 치열한 논쟁이 아니라 아름다운 꽃 한송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는 얘기입니다. 얼마 전 한 곡의 노래를 알게 되었습니다. 노래 제목이 '진달래'였습니다. "추운 겨울에 일을 밖에서 하다보니 손발이 시리고 참으로 곤하다. 인생이 이런 거지. 산다는 것이 쉬운 일 아니야. 저기 저기 보세요. 콘크리트 틈에 진달래가 피었네. 아름다운 진달래 나를 보려 찾아왔구나. 진달래야 너는 원망도 않고 모두를 반기는구나. 너를 만나 기쁘다. 안녕, 감사해." 혹시 카카오톡, 페이스북, 유튜브 같은 소셜미디어에서 말다툼을 벌이다 멀어진 친구가 있습니까? 벌써 11월인데, 오늘은 예쁜 낙엽 사진이나 한강 풍경 사진을 보내면서 이렇게 덧붙여 보면 어떨까요. "친구야, 예쁜 걸 보니 니 생각이 난다. 속상했지? 미안해. 예수님의 사랑으로 용서해줘. 우리 꽃처럼 다시 웃자."

 

기사입력 : 2019.11.10. am 10:52 (편집)
김용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