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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꽃피는 하얀 솜송이꽃 목화

목화는 8월부터 꽃이 피고 10월이 되면 호두만한 크기의 열매를 맺는다(사진). 성숙한 열매가 건조되면 껍질이 갈라지고 그 안에 가득한 하얀 솜을 터트려서 솜사탕처럼 생긴 솜 꽃송이를 피운다. 목화는 인도가 원산지로 고대부터 면직기술과 제품의 중심지였으나 훗날 유럽과 중국 등 세계로 전파됐다. 우리나라는 고려 말 공민왕 때 중국 원나라에서 목화를 발견하고 문익점이 씨앗을 가져와 재배함으로 전국에 전파됐다. 당시의 의복은 주로 대마에서 삼실을 직조한 거친 삼베나 누에고치에서 뽑아 낸 명주실의 직물인 비단이 주를 이루었던 시대였다. 그 외에 짐승의 가죽을 이용한 모직과 모피가 있었으나 당시에 헐벗고 가난한 백성에게 그다지 큰 도움이 될 수 없었다.

 그 시대에 목화의 전래는 우리 조상들의 의복과 침구류 발전에 놀라운 기여와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 목화를 대량 재배해 얻은 솜에서 실을 뽑아 각종 의복과 침구류를 만들었다. 특히 목화섬유가 갖는 따스함과 포근함은 추운 겨울을 무사히 지낼 수 있도록 도왔다.

 이렇게 사람에게 필요한 섬유를 공급하여 유익을 주는 식물도 자연계에서는 그다지 흔하지 않다. 한 때 우리나라 농가에서는 가을에 딸을 시집 보내려면 그해 목화를 많이 재배해서 옷감과 함께 혼수를 준비했다. 이렇듯 목화는 일상생활과 매우 밀접하고 유용한 식물임을 알 수 있다.

 한편 16세기 초 신대륙 미국의 광활한 남부지역에는 끝없이 넓은 목화밭이 만들어졌다. 이 때 수많은 노동자의 부족한 일자리를 채운 것은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온 흑인들이었다. 목화는 짧은 기간 안에 솜 꽃송이를 피우기 때문에 제때 수확하지 않으면 품질이 좋지 않아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다. 미국 흑인노예 제도의 시작은 대량으로 목화를 재배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그러므로 신대륙에서 최초로 흑인노예의 고된 노동으로 얻어 낸 것은 많은 양의 값싼 목화솜이었다. 지금도 애창하는 흑인영가는 당시 목화밭에서 고된 노동을 하면서 부르던 일종의 복음성가이다. 흑인 노예들은 고난과 고통스러운 노동 가운데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 그리고 자유와 해방을 노래하면서 흑인영가를 탄생시켰는데 이는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민족의 고통을 연상시킨다(출 2:23).

 이렇듯 삶이 힘들고 지칠 때 하나님을 향한 부르짖음과 상한 심령에서 불리는 찬양과 기도는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큰 위로와 평안으로 다가온다(시 55:16). 하나님은 부르짖는 자의 기도를 들어주시며, 그리스도인들은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전인구원의 치유와 회복으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윤철종(이학박사·고촌순복음교회 담임목사)

 

기사입력 : 2019.09.29. am 10:26 (입력)
이미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