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어느 순간 불완전한 인간의 능력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벽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이를 칼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1969)는 한계 상황이라고 불렀다. 인간이 한계에 도달하는 상황에서 그 상황을 도피하거나 자기의 존재를 상실하게 되는데, 그게 인간이기 때문이란다. 충무공 이순신은 12척의 배로 명량해전에 나섰을 때 두려움의 한계상황을 뛰어 넘는 긴 편지를 선조임금에게 썼다. “신(臣)에게는 아직 전선 12척이 남아있습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오히려 지켜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충무공은 ‘죽으려고 하면 살 것이고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다(死則必生 生則必死)’라는 일사각오로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율법학자요 제사장인 에스라는 바벨론 포로에서 예루살렘으로의 제2차 귀환여행을 시작하기에 앞서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평탄한 길을 간구했다. 사실 세계 문명의 중심지였던 바벨론 문화에 익숙한 백성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폐허의 땅을 개척하는 것보다는 바벨론에서 노예로 사는 것이 훨씬 더 좋다고 생각했을 터이다. 더구나 그들은 유대인 특유의 상술로 많은 재물을 모은 상태였다. 1세대를 지나 유대인 2∼3세들 중 바벨론의 여자들과 결혼한 자들도 많았기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마냥 따를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귀향 여정에도 이방인들과 광야 도적떼들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러한 한계상황에서 에스라는 보병이나 마병을 구하여 안위를 취하는 일마저도 부끄러워하고(스 8:22) 오직 야훼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외세의 힘을 의존할 염려를 미리 끊어버렸다.

 그렇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바벨론 같은 세상을 떠나서 신앙의 본향인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한다. 당시 귀환자들은 에스라의 권유나 강요에 의해서 귀환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원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뜻을 품은 자들이었다(스 7:13). 성도들의 삶이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가나안으로 간 것처럼 죄악된 세상에서 예루살렘으로 발걸음을 옮겨 가는 삶이어야 한다.

 마침내 에스라 일행은 약 1440㎞나 되는 길을 4개월에 걸쳐 생명 하나 상하지 아니하고 안착한 후 스룹바벨 제2성전을 세우게 되었다. 이제 에스라의 신앙적인 결단이 필요한 때다. 온 세상이 요란하고 고통과 신음하는 소리가 크지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성전을 세우는 행동, 모이기를 힘쓰며 예배하고 기도하며 순종의 삶, 사명의 삶을 살아내야 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면 반드시 놀라운 기적이 있을 것을 확신해야 한다.

 주님은 인간의 한계상황에서 예루살렘의 언어를 선포하신다.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