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복음가족신문은 ‘신앙의 명가’ 코너를 통해 한국교회에서 신앙의 명문가를 이룬 목회자 가정을 찾아 소개합니다. 첫 번째 소개하는 신앙의 명가는 4대째 신앙을 이어오며 많은 목회자와 장로 권사를 배출한 이영훈 위임목사의 가족입니다. 세상 문화인 맘몬주의와 인본주의가 교회 안에도 들어와 참된 신앙을 이어가기 힘든 세태 속에서도 믿음의 본질을 잃지 않고 신앙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여러분의 신앙에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편집자 주>
외조부 김종삼 목사 눈물로 심고 뿌린 복음의 씨앗


평양신학교 8회 졸업 후 황해도 장연에서 7개 교회 순회목회
김선실 목사(딸), 이영훈 목사(외손자) 대를 이어 하나님 나라 충성
자전거 타고 장연 일곱 교회 순회목회
황해도 장연은 백령도에서 훤히 보일 만큼 가까운 곳이다. 이곳은 선교사가 들어오기 전 기독교신앙을 받아들인 성도들이 자력으로 세운 한국 최초의 교회인 소래교회가 있는 곳이다. 일찍 복음이 들어온 덕분에 장연에는 기독교인들이 유난히 많았다. 소망교회 설립자 곽선희 목사, 한국 교회사의 거목 민경배 교수,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사슴)’라는 시를 남긴 노천명 시인이 장연 출신이다.
바로 이곳 장연에서 이영훈 목사의 외할아버지 김종삼 목사가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눈물과 기도로 교회와 성도들을 성장 시켰다. 김종삼 목사는 평양신학교 8회 졸업생으로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장연 지역 일곱 교회를 돌보는 순회목회를 했다. 평양신학교는 장로교 교역자 목사 교육기관으로서 1901년 마포삼열 선교사가 세웠다. 평양신학교는 평양대부흥운동 현장인 평양에 기독교 지도자 양성과 한국 신학의 정립, 한국교회의 지속적 부흥 원동력이라는 목적을 갖고 설립됐다. 이기풍 목사 길선주 목사 등이 평양신학교를 졸업했다.
곽선희 목사(소망교회 원로목사)는 생전 김종삼 목사를 회고하며 “내 고향이 바로 장연입니다. 이영훈 목사님의 외할아버지를 내가 잘 알지요.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셨지요. 아주 훌륭한 목사님이셨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영훈 목사의 친할아버지 이원근 장로는 광복과 함께 장연에 내려와 국가재건위원장을 지냈다. 그것 역시 김종삼 목사와의 관계 때문이었을 것이다. 광복의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정국은 다시 혼란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북한 지역에 공산 정권이 들어선 뒤 교회와 기독교인에 대한 탄압이 시작됐다. 김종삼 목사는 교회와 성도들을 지키느라 끝내 월남하지 못했다. 가족들은 김종삼 목사가 북에서 순교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영훈 목사의 어머니인 김선실 목사는 김종삼 목사의 2남 3녀 중 막내딸로 태어나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김선실 목사는 어린 시절 늘 아버지의 자전거 뒤에 타고 심방을 따라 다니곤 했다고 한다.

대를 이어 목사를 배출하다
이영훈 목사의 친가가 장로를 많이 배출한 가문이라면 외가는 대를 이어 목회자를 많이 배출한 가문이다. 김선실 목사를 비롯해 자녀들은 김종삼 목사와 강영신 사모로부터 철저한 신앙 교육을 받았다. 김선실 목사와 함께 월남한 작은 오빠 김선경 목사가 김종삼 목사의 대를 이어 목사가 됐다.
김선경 목사의 두 아들 김성규 목사 김일규 목사를 통해 3대째 목사 가문을 이뤘다. 또한 김성규 목사의 아들이 목사의 길을 준비하고 있다. 4대에 걸친 목사 가문의 탄생이 예고 되고 있다. 135년 한국기독교회사에 4대에 걸친 목회자 배출은 드문 일이다.
이영훈 목사의 외삼촌인 김선경 목사는 서울 북아현교회를 설립했다. 나중에는 제천에 두개의 교회를 세워 섬기다가 별세했다. 장남 김성규 목사와 차남 김일규 목사 모두 예장 합동 측 목회자다. 김일규 목사의 처남이 KBS교향악단 지휘자였던 예일대 함신익 교수이다.
이영훈 목사의 어머니 김선실 목사
김종삼 목사의 막내딸인 김선실 목사는 1929년 3월 29일 황해도 장연에서 태어났다. 1945년 광복 직전, 여의도순복음교회 장로회장을 지낸 고 이경선 장로와 결혼하여 슬하에 5남매를 두었으며 둘째 아들이 이영훈 목사, 셋째 아들이 이영찬 선교사이다.
김선실 목사는 시부모를 봉양하고 다섯자녀를 양육하면서도 서대문 순복음중앙교회 지구역장으로 교회에 충성 봉사하며 전도에 앞장섰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최자실 목사님의 분신’으로 불려질 정도였다. 전국 여교역자회 모임인 상록회 초대회장을 지냈고 성숙한 신앙과 리더십을 겸비했다.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 누구보다 헌신했던 김선실 목사의 마음 한 구석에는 늘 아픔이 자리하고 있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남자와 여자의 차별이 매우 심한 시대였기에 여성이 신학을 공부하거나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일이 흔치 않았다. “딸로 태어나서 공부를 많이 못한 것이 마음 아프구나. 나도 주의 종이 되고 싶었다. 목사가 되지 못한 것이 한스럽구나.”
김선실 목사는 늘 마음에 담고 있던 배움의 꿈을 늦은 나이에 기어이 성취했다.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만큼 바쁜 상황 속에서도 순복음신학교에 입학해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전도사로 활동하다가 은퇴했다. 은퇴 후에도 중국과 제3세계 선교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쳤고 2014년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에서 명예 목사 안수를 받아 아버지 김종삼 목사의 대를 이어 목사가 됐다.
김선실 목사는 아버지께 물려받은 대쪽 같은 신앙을 자녀들에게 전수했다. 특히 이영훈 목사에게 항상 겸손한 모습으로 살아갈 것과 주의 종의 말씀을 예수님의 말씀처럼 따르고 순종하라는 가르침을 신앙의 유산으로 물려줬다.
복순희 기자 <자료제공=신앙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