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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림절

“멸절에서 구원으로, 에스더 이야기”

“이 달 이 날에 유다인들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 이 두 날을 지켜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 하매”
-에스더 9장 22절


상점 가득 쌓여 있는 가면과 가장무도회복들 사이로 분주히 사람들이 돌아다닌다. 저마다 미소를 띄고 아이들은 무엇이 즐거운지 낄낄거리면서 쇼핑을 한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가장행렬의 의상을 입고 얼굴에 칠을 하고 돌아다닌다.
 도시 전체가 커다란 가장 무도회장이라도 된 듯이 서로가 각자의 모습을 뽐내면서 돌아다닌다. 심지어 군인들도 얼굴에 귀여운 하트모양이나 머리띠를 하고 돌아다니는 모습이 눈이 띈다. 요즘 이스라엘 부림절 거리 모습이다.
 부림절은 3월과 4월 사이 유월절 전에 지내는 이스라엘의 절기이다. 부림절은 이스라엘의 여러 절기 중 여러 가지 의미에서 가장 시끌벅적한 절기이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다가오면서 가장 먼저 맞는 절기이다. 유월절 이전에 시작되는 절기이기에 기쁨을 알리는 절기이다.

 부림절은 두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나는 멸절이라는 유대민족의 위기와 그 멸절을 극적인 반전으로 바꿔낸 이야기일 것이다. 성경의 에스더서는 이 절기의 유래를 담고 있다.  유대인 처녀가 페르시아 왕궁의 왕후가 되어서 자신의 백성을 구원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다.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거의 모든 성경 속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드러내시고 선지자들과 혹은 왕들과 이야기를 하신다. 하지만 에스더서 속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언급은 있지만 하나님 자신이 등장하거나 그 이름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스더서를 정경 속에 포함한 유대인들은 이 부림절의 사건을 통해서 역사 속에 일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 권위와 은혜를 이해하고 있다. 에스더서는 왕후의 이야기가 아니라 유대인 전체의 이야기인 것이다.

 부림절의 대략적인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페르시아의 총리대신이었던 하만은 평소에 자신을 무시한다고 여겨 유대인 모르드개를 죽이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비밀리에 유대인들을 말살하기 위한 계략을 꾸민다. 그런 계략을 알게 된 모르드개는 왕후인 에스더를 찾아가 하만의 계략을 알리면서 유대인들을 구하기 위해서 왕을 설득하라고 한다. 하지만 에스더는 주저하게 된다. 모르드개는 주저하는 에스더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 왕후님을 그 자리에 앉게 하신 것이 바로 이 때를 위함이 아닐까요? 물론 왕후님께서 하지 않으셔도 하나님은 반드시 그 백성들을 구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왕후님은 그 구원 가운데 있지 않을 것입니다.” 에스더는 그런 모르드개의 꾸짖음 가운데 깨닫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이야기가 나온다.

 에스더는 왕에게 하만의 궤계를 알리고 유대인이 구원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게 된다. 하만은 죽고 모르드개와 유대인들은 하만의 무리와 싸워서 승리하고 멸절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된다.
 에스더서에 나오는 부림절은 하만이 유대인을 죽일 날을 제비 뽑았다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결국 그 날은 유대인들이 승리할 수 있는 날이면서 구원받은 날로 기억된 것이다. 그렇기에 유대인들은 이날을 축제로 기린다. 가장무도회처럼 꾸미는 것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숨겨야 했던 것을 나타낸다고 한다. 유대인임이 드러나면 죽임을 당했던 그들의 아픈 역사의 희극적인 표현인 것이다. 오늘날에도 이런 축제를 즐기면서 그들은 에스더서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을 소망한다.

 이런 축제의 이야기 속에서 그들 가운데 서서 기도하는 것은 이들이 소망하는 구원이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임하였다는 것을 이들에게도 보여주시길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다. 저들의 눈이 뜨여서 그리스도 예수를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면서 오늘 그 축제의 자리에 참여해 본다.

 

기사입력 : 2019.03.17. am 10:43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