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일제의 강점 아래서 민족의 독립과 자결을 외치며 분연히 일어났던 3.1운동은 전 세계에 대한민국의 자주독립의 당위성과 의지를 널리 알렸습니다. 그 중심에 기독교가 있었습니다. 순복음가족신문은 3.1운동 100주년의 해를 맞아 1월 20일자 신문부터 7회에 걸쳐 3.1운동의 역사적 의미와 기독교의 역할을 되새기고, 기독교가 주도한 3.1운동의 정신을 향후 교회가 어떻게 계승하고 통일시대를 대비하며 국가와 민족을 이끌어 가야 할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글은 한국교회사의 최고 권위자인 민경배 백석대 석좌교수가 집필합니다.<편집자 주>

3.1독립운동은 세계사적 사건
3.1독립운동은 한국과 세계 공조 동행한 거대한 세계운동
그 핵심체요 주도세력은 바로 한국기독교였음을 기억해야
3.1독립운동은 세계사적 사건
3.1독립운동은 우리 조국 한국의 독립을 위한 외침이요 전 국민의 아우성이었다. 그것은 한 목소리로 외쳐졌고 전국민의 일치된 절규였다.
하지만 그 독립운동은 세계사에 연결된 세계적 사건이었다. 다시 말하면 그 운동의 대의명분이 우리 한국만을 위한 주장이 아니었다. 보편성을 가진 인류의 문제로 부각시키고 있었다. 그런 마음으로 독립운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다른 나라는 관계없다. 우리는 꼭 이렇게 살아야겠다.” 그런 독자적 주장이 거기 없었다. 우리는 세계질서 안에 한 위치를 차지하는 세계의 한 국가로서 우뚝 솟고 싶다는 것이 우리의 간절한 소원이었다.
한국의 위대한 국가의 이상과 비전이 그렇게 빛나고 있었다. 우리 3.1독립운동이 대한민국 헌법의 전문에 당당하게 들어가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의 승리, 그 확인
일본 아이치대학(愛知大學)의 에구치(江口圭二) 교수는 “3.1독립운동이 결국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게 된 원인이었다”는 말을 한다. 1919년 12월까지도 간도(현 옌볜)에서 독립운동이 계속되자 일본이 조선독립운동의 정당성과 그 확산을 잠재우고 군국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유조구사건을 일으키고, 다음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그것이 중일전쟁으로 발전하다가 대동아전쟁 곧 제2차 세계대전으로까지 확장되었다는 해석이다.
이처럼 우리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3.1운동이 세계사적인 사건이란 것을 여기 입증하려고 한다. 우선 3.1독립운동에 대한 세계의 시각은 온 세계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 그렇게 엄청난 희생을 치르면서 괴멸시켰다고 생각한 프러시아적 군사강권통치가 여전히 살아남아서 일제의 한국 식민지 통치에 그대로 자행되고 있다는 비통한 심정이었다.
대전에서 전취한 민주주의나 자유 그리고 인권과 같은 그런 가치가 다시 한국에서 희생되고 있다는 환멸이었다. 3.1독립운동을 세계사적 관점에서 보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사실 독립선언서에는 한국의 독립이란 구호가 묘하게 세계사적 문맥에서 외쳐지고 있었다. 정의 인도 그리고 인류양심의 발로 세계개조의 대 기운 시대의 대세 전인류공존 공생권 그리고 인류통성 시대양심 세계평화 인류행복 인류역사 세계 기운 이런 사상들이 즐비하다.
3.1독립선언서 그 첫마디에 그것이 확연히 들어나있다. 곧 “인류적 양심의 발로에 기인한 세계개조의 커다란 기운에 순응해서 함께 전진하기 위하여 우리가 독립을 소리쳐 외치는 것인데 이는 하늘의 명령이며 시대의 대세인지라 전인류가 함께 공존해서 함께 살아갈 권리의 정당한 발동이다. 아아, 새로운 천지가 눈앞에 전개되도다. 위력의 시대가 사라지고 도의의 시대가 다가 오는도다.”
이처럼 3.1독립운동이 내세운 깃발은 한국이 세계역사의 흐름 바로 그 중심에 서 있다는 선언이었다. 한국만을 위한 독립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한국은 세계의 대세 그 물결에 따라 전진하는 세계의 국가요 나라라는 선언이었다. 한국의 이런 세계의식 어디서 나왔던가.
한국기독교의 세계의식이 이끈 3.1독립운동
3.1독립선언서의 작성자 최남선은 해방 이후에 YMCA에서 3.1독립선언서에 대하여 강연한 일이 있다. 그때 그는 정확하게 그 선언서는 기독교의 입장이 반영되어 있고 그렇게 보아야 3.1독립운동이 이해된다고 단언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3.1독립선언서는 3.1독립운동의 주도세력이요 그 핵심체인 한국기독교를 이해하여야만 그 정신을 올바로 이해할 수가 있다는 말이 된다.
한국교회는 처음부터 세계의식에 깊이 젖어 있었다. 1892년의 한국 주재 선교사가 지은 찬송가에는 만왕 만국 저 북방 얼음산 아프리카와 같은 말들이 도처 외쳐지고 있었다. 미국북장로교 회외선교부의 총무 아서 브라운은 한국에 왔다가 한국이 세계의 전략적 요충지요 심장 지역이라 지목하고는 세계에다 대고 그렇게 소리치고 있었다.
1907년 정미조약이 체결되던 때에 일이다. 당시 조직된 한국장로교 독로회(獨老會) 장내에는 만국기가 가득 차 있었다. 1910년 예루살렘에 모였던 세계 최초의 세계 기독교 국제회의에서는 한국교회는 기독교가 세계화한다는 상징이라는 보고서가 채택된다. 기독교 세계화의 실증이 한국기독교회라는 것이었다.
세계는 한국의 3.1독립운동이 그 기점을 그때 1919년 3월로 잡고 또 독립운동의 방법도 무저항 평화로 한다는 것이 모두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질서의 그림에 의한 것이었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었다.
세계가 공감한 3.1독립운동
미국의 교회협의회(NCC)는 3.1독립운동 문제는 세계적인 차원에서 해결되어야 하고 그런 때에 비로소 제대로 해결된다는 선언을 한다. 미국이나 캐나다 영국 호주의 의회도 같은 결의를 한다. 더구나 미국은 상하의원 30명 수행원 등 150명 한국방문을 결의하고 있었다. 세계가 나서고 있었다.
3.1독립운동은 한국과 세계가 공조하고 동행한 거대한 세계운동이었다. 세계가 나선 이유는 일제 군경 헌병의 대량학살과 같은 가혹하고도 잔학한 진압과 탄압 그리고 만행의 고발이 주목적이었다. 그 진압과정에서의 비인도성을 <독일기관총>이라 정죄하고 궐기하고 있었다. 역사를 거슬리는 만행을 고발하는 말들이었다.
3.1독립운동이 지난 1년 후 1920년 초 선교사들이 발행하던 ‘코리아 밋션 필드’라는 선교지에 이런 글을 싣는다. 곧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으면서 하나님의 무궁한 것을 정신적으로 다 소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한국은 이제 동양과 세계가 풍요하게 될 수 있도록 그 소유한 것을 베풀고 펼치는 그런 나라가 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한국은 세계사에 우뚝 선 나라라는 것이 확인된 것이 3.1독립운동이었다.
민경배(백석대학교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