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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하나님의 임재가 떠나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성을 정복한 뒤 여호수아를 따라 내륙으로 더욱 전진하게 된다. 그리고 닿은 곳이 세겜(Shechem)성이다. 그들은 세겜 성에 있는 에발산과 그리심산에서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더 아래로 전진하여 실로(Shilo)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곳에 하나님의 성막을 세워 비로소 가나안 땅 실로에 자리를 잡고 머물게 된다. 실로를 중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곳곳으로 자신들에게 주어진 땅을 향해 나아갔다. 그들은 가나안의 이곳저곳을 정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한다. 그리고 실로의 성막은 예배의 중심으로 자리잡는다.

 실로의 성막은 그 후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옮겨가지 전까지 오랫동안 이스라엘 백성의 예배 중심지였다. 그들은 매년 절기에 따라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실로에 올라왔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배는 실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장막이 있는 실로를 떠나 각자의 터전으로 흩어져 살게 된 후로 이스라엘 백성은 타락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절대로 하지 말라는 우상숭배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자리잡기 시작했다. 멀리 있는 실로의 성막보다 가까운 바알의 신전과 아세라의 신전을 찾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절기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실로까지 가지 않아도 가까운 동네에 자신들의 유익과 환락을 제공하는 이방신들이 더 쉽게 느껴진 것이다. 그렇게 실로의 예배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쇠퇴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사무엘이다. 사무엘의 이야기는 이곳 실로에서 시작된다. 실로의 성막이 있었다는 자리에는 지금 한나의 기도문이 크게 적혀 있다. 잉태하지 못하던 여인이 아들을 낳게 되고 하나님께 올려드린 기도는 모든 잉태 못하는 여인들의 고백이었다. 한나는 자신의 고백을 통해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역사하심을 고백한다. 그 고백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가운데 일하심을 드러낸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을 하나님의 손에 내어 맡기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준다. 이 노래는 후에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의 고백과도 통한다. 예배가 떠난 자리에 하나님은 다시금 예배의 회복을 위해 한 여인을 통해서 자신의 일을 할 사람을 부르신 것이다.

 사무엘의 이름은 ‘하나님이 들으셨다’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예배가 멈춘 이곳에서 하나님을 찾고 예배한 여인의 목소리에 응답하신 것이다. 이로 인해서 이스라엘은 다시금 하나님을 찾게 되고 실로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역에서 하나님을 향한 예배를 회복하게 된 것이다. 실로는 그러나 이스라엘의 뼈아픈 실수를 드러낸 곳이기도 하다. 예배가 멈춰진 것뿐만 아니라 그들이 가진 하나님 임재의 증거인 법궤를 블레셋에게 빼앗기게 되며 결국 실로의 성막은 불에 타고 사라진다. 법궤는 후에 블레셋에 의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돌려보내지지만 실로는 폐허로 남게 되어 예배는 더 이상 그곳에서 드려지지 않게 된다. 이스라엘 성지 순례객들 중 실로를 찾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실로 유적지가 발굴된 것이 최근이기 때문이다. 유적 대부분이 아직 발굴중이고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성막의 위치도 아직은 흔적만 볼 수 있을 뿐 뚜렷하게 보이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유적지는 아주 흥미로운 영화를 한편 보여준다. 실로 성막 유적이 바로 보이는 전망대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실로의 이야기는 유대인들의 초기 정착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이 실로가 어떻게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버려지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이 실로의 유적지도 우연찮게 발견된 곳이다. 이 지역을 탐방하고 조사 중이던 고고학자들이 산중턱에서 토기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 토기들은 청동기 후기시대 토기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정착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이런 토기가 실로를 중심으로 인근 산과 들녘에서 어마어마한 양이 발견된 것이다. 이를 토대로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것이 지금의 실로 유적이다. 학자들이 말하기를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전국 각지에서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온 백성들은 곡식과 제물을 토기에 담아 왔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규율 상 그들이 드린 제물을 담은 토기는 다시 가져가서 쓸 수 없다. 그것은 거룩한 것이므로 하나님께 온전히 바친다는 의미로 제물을 담은 토기를 깨뜨려 버렸다고 한다. 그렇기에 이곳 주위에 많은 양의 깨진 토기들이 발견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놀라운 발견이었다.


 실로의 유적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에는 유대인 정착촌이 있다. 그곳에는 실로의 성막 모형을 본 따 만든 회당이 있다. 이 정착촌의 대부분은 유대인들로서 그들은 이곳 실로야말로 자신들의 예배의 원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곳이 다시금 예배의 자리로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에 이곳에 자리 잡았다고 한다. 폐허 위에 세워진 새로운 마을, 그러나 과연 그 마을은 얼마나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마음을 온전히 지켜내고 있을까?
 우리의 예배의 원점은 어디일까? 실로는 평안의 때 혹은 안전하게 됨을 뜻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성막이 정착한 이곳을 떠나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찾아갔다. 그리고 예배의 처소를 찾아오는 일을 반복하였다. 광야에서 예배가 항상 삶의 중심이었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예배를 찾아와야 하는 삶을 살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 그들은 그 삶에서 실패하여 타락하게 된다.
 과연 우리는 어떨까? 우리는 예배를 찾아가는 삶의 여정에서 실패하고 있는가, 아니면 성공하고 있는가? 우리에게서 평안과 안전은 하나님 곁에 있는 삶이 아닐까? 우리는 하나님이 항상 삶의 중심이면서 예배가 삶의 중심이던 광야와 같은 삶으로 살아야하는 것이 아닐까?

김요셉 목사

 

기사입력 : 2018.11.18. am 09:27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