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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리앗 갓(Qiriyat Gath)과 벳 구브린(Beit Guvrin), 두 도시 이야기

키리앗 갓 - 북아프리카 중동의 유대교와 정통 유대교가 ‘갈등’벳 
구브린 - 마레사 성읍과 헬라 로마시대의 유적이 공존하는 도시

 이스라엘의 최남단 도시인 브엘세바에서 북으로 올라가는 길은 세 갈래가 있다. 하나는 북동쪽 헤브론과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60번 도로인데, 이 길을 따라가다 동쪽으로 꺾으면 사해와 만나고 북쪽으로 올라가면 갈릴리 가는 길이다. 또 하나는 34번과 4번 도로로 지중해 해안을 타고 올라가는 길이다. 마지막 하나는 생긴 지 불과 10년도 안 된 6번 중앙고속도로이다. 이 도로는 이츠하크 라빈 총리의 이름을 따서 ‘라빈 고속도로’라고 불리는데 이스라엘의 남과 북을 관통한다. 이 도로는 북으로는 하이파까지 연결되어 있고 남으로는 현재 브엘세바까지 연결되어 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도로는 남과 북을 연결하는 다양한 길로 되어 있다. 그리고 남부도로의 연결 중심에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도시가 있다. 바로 현대도시 키리앗 갓(Qiriyat Gat)과 과거의 유적인 벳 구브린(Beit Guvrin)이다.


블레셋 골리앗의 고향

 이스라엘을 여행하다 보면 키리앗(Qiriyat)이라는 지명을 자주 만난다. 키리앗 갓, 키리앗 아르바, 키리앗 쉬모네 등. 여기서 ‘키리앗’은 도시 혹은 마을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니 성경에서 ‘기리앗’이니 ‘키리앗’이라는 말은 도시라는 뜻이다. 키리앗 갓은 골리앗의 고향이기도 한 블레셋의 족속이름인 ‘가드’에서 나온 명칭이다. 키리앗 갓 근처에는 가드 족속이 살던 블레셋 시대의 유물이 있는 텔 에라니란 곳도 있다. 그리고 최근에 그 근방에서 골리앗 시대의 성문이 발견되어 활발한 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현대의 키리앗 갓은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한 이후 각 지역에 ‘발전도시’라는 형태의 도시 개발정책으로 탄생한 공업도시들 가운데 하나이다. 1954년 소수의 모로코 이주 가정으로부터 시작된 키리앗 갓은 현재 인구 5만 명의 도시로 성장함으로서 이스라엘의 근대역사에서 성공한 도시들 가운데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개발 도시들은 모두 이주 유대인들의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소수 모로코 가정으로 시작된 도시는 이후 수많은 이주 유대인들이 몰려왔고 그 결과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도시로서 상충된 문화와 갈등이 존재하게 되었다. 실제로 이 도시를 잘 들여다보면 북아프리카 유대교와 중동 유대교, 그리고 정통 유대교 사이에서 나타나는 긴밀하고도 묘한 긴장감이 엿보인다.

 이 도시에는 또한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에티오피아 계 유대인 정착마을이 있다. 도시 외곽에 위치한 에티오피아 계 유대인들은 아프리카인들처럼 피부색이 검다. 하지만 이들은 오랫동안 유대교적 관습과 전통을 지켜왔으며, 아프리카 문화 속에 녹아들었음에도 다른 아프리카인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왔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들에 대해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해 왔는데, 정부가 생각하는 유대교적인 모습과 이들이 가진 유대교적 전통 사이에서 나타나는 차이점 때문에 에티오피아 계 유대인을 정통 유대인으로 인정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를 야기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리앗 갓 사람들은 에티오피아 계 유대인들을 자신들의 사회 안에 받아들이는 데 큰 문제가 없다고 여기는 것 같다. 이처럼 키리앗 갓은 과거 블레셋과 이스라엘 사이의 긴장관계처럼 다양한 문화적 이주민들과도 긴장관계를 형성하지만 어쨌든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린 도시이다.

로마시대의 원형극장 유적도

 이 도시와 같은 성향을 가진 도시가 또 하나 존재했는데 바로 키리앗 갓 근처에 있는 벳 구브린이라는 유적도시로 탈무드에 의하면 ‘자유인들의 도시’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벳 구브린은 과거 유다 성읍 중 하나로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이 지은 마레사 성읍 요새가 있던 곳이다(대하 11:8). 성경에도 여러 번 등장하는 이곳은 키리앗 갓과 마찬가지로 남과 북, 동과 서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에 위치하여 일찍부터 무역이 발달하였고 역사적으로도 수많은 강대국들이 거쳐 간 거점 도시들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그래서 벳 구브린에는 지금도 헬라와 로마시대의 유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시리아 귀족들의 무덤이나 마을 터, 그리고 외곽에는 로마시대의 원형극장이 보존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과거 솔로몬시대부터 살아온 유대인들을 비롯해 흘러들어온 이방인들과 제국시대 사람들까지 모여 살므로써 다양한 문화와 습성들이 녹아들어 있다. 그러므로 벳 구브린의 유적들 곳곳에는 당시의 흔적들이 스며 있다.

 이곳 또한 교통의 요충지여서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이 섞여 들어와 독특한 문화적 흔적을 남겨 두었을 뿐만 아니라 아직까지도 그 문화적 종교적 흔적들을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살았는지 잘 보여준다. 이곳에는 제사에 쓰는 비둘기들을 기르는 거대한 사육장이 있고, 죽은 이들을 장사하기 위한 동굴식 매장묘도 있다. 헬라와 로마제국 사람들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의 문화까지 섞여 새롭게 형성된 매장방식들도 남아 있다.

 사람들은 길과 길이 만나는 곳에 모여 살았다. 거기서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이 녹아들었다. 이스라엘 곳곳에도 그 흔적들이 남아 있다. 특히 이곳 키리앗 갓과 벳 구브린은 이스라엘의 과거와 현재의 축소판과도 같다. 과거에도 제국의 문화와 관습, 종교 등이 모여들어 새로운 문화와 전통을 만들어냈듯이 현대의 도시들도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낸다. 키리앗 갓과 벳 구브린은 서로 거울처럼 과거와 현재를 비추고 있다. 다른 이스라엘 도시와는 사뭇 다르게 과거의 모습을 투영하면서 현대의 새로운 모습까지 보여주는 이 두 도시는 어쩌면 이스라엘 도시들의 미래일지도 모른다.

김요셉 목사

 

기사입력 : 2018.07.15. am 10:42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