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운동으로 개인과 사회 전체를 구원으로 이끌어
TV, 라디오 등 방송 매체로 전 세계 복음화 앞장
질적 행복 추구하는 현 한국교회 개혁에 소금과 빛 되길
여의도순복음교회가 2018년에 마침내 창립 60주년을 맞았다. ‘순복음’(Full Gospel)은 꽉 찬, 풍성하고 온전한 복음이다. 순복음은 사람이 지혜로 모으고 짜깁기한 종합복음이 아니다. 순복음은 ‘성령의 은총’이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역사는 성령의 은총으로 폐병으로 인한 죽음의 문턱에서 치유 받고(의인화) 새 생명을 살아감(성화)을 온 몸과 혼으로 고백하는 조용기 목사의 신앙적 삶과 신학과 그 궤도를 같이한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초창기 개척교회 시대(1958∼1961)를 대조동 판자촌에서 시작했다. 당시의 병약하고 가난하고 힘없는 서민들에게 선포된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게 되는”(요삼 1:2) 소위 삼중축복의 말씀은 ‘첫 순 복음’이었다. 성령침례를 체험한 이들에게 주시는 십자가 구원과 부활 희망의 복음이다.
두 번째 성장시대(1961∼1973)는 서대문의 순복음중앙교회 시절이다. 모세의 광야목회의 핵심인 천부장-백부장-십부장 중심의 공동체(출애굽기 18장)를 상황에 맞게 실현한 ‘구역조직’을 육성 발전시켰다. 교회가 그리스도를 반석으로 삼고 성령의 능력으로 움직이는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임을 알렸다. 한국선교 초기에 차별받고 은둔 속에 살던 부녀자들이 복음으로 인간 해방을 누리고 성서반포와 전도에 열성이던 시절의 사건이 되살아났다. 여성중심의 교회 내 ‘구역조직’ 지도력 육성은 그리스도의 “진리가 자유롭게 한다”(요 8:32)는 인간해방, 특히 여성해방의 영성을 교회 공동체 속에서 먼저 구체적으로 실현한 ‘두 번째 순복음’이라고 생각한다.
세 번째의 대 부흥 시대(1973∼현재)가 바로 지금의 여의도순복음교회이다. 10만성도(1979)로 급성장했고, 급기야는 세계 최대의 교회로 초유의 급성장을 기록했다. 중요한 것은 지난 시절의 교회 내 ‘구역 공동체’운동이 한국교회 양적 성장의 촉진제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세계 복음화의 불길을 당기는 ‘세계를 위한 구역 복음화 운동’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조용기 목사의 목회는 국내외적으로 성령운동과 교회성장의 지렛대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 한국교회 성장은 물론 세계 초유의 급격한 경제 성장의 물결과 그 궤도를 같이 한다. 세속사회가 말하는 희망의 촉진제인 ‘적극적 사고’가 크게 작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용기 목사 자신은 예를들어 요한삼서의 삼중축복의 복음을 인간의 ‘사고’의 차원을 넘어서 성령의 능력이 함께함을 말하기에 훨씬 더 적극적 ‘선포’로, 곧 ‘적극적 희망의 선포’로 선용할 수 있었다고 본다. 여기서 한 가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한국의 급격한 경제성장은 복병을 만났다. IMF라 이야기 되는 금융위기의 쓰라림을 견뎌내고 이제는 양적성장주의에서 질적 행복을 추구하는 질적 복지의 길로 향하고 있다. 양적 성장을 누리던 한국교회를 지금 사회가 거꾸로 교회를 염려하는 정체성 상실의 위기를 건너고 있다.
이제는 ‘신앙 성숙’을 맛보게 하라는 성령의 역사를 경험해야한다. 다시금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자리매김하는 혁혁한 교회개혁의 결단이 요구되고 있다. 이제 새 희망을 찾고 새 희망을 세상에 전해야 한다.
조용기 목사의 성령운동을 통한 희망목회의 진면목을 살펴보고 싶다. 그의 수많은 저작과 설교에 나타난 일관된 성령이해를 필자는 두 가지로 파악한다. 하나는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에 동참케 하는 ‘구속의 성령’(Spiritus redemptor)이라는 고백이다. 고난 없는 기쁨이 아니라 고난을 이긴 기쁨을, 질병 없는 건강이 아니라 질병을 이긴 건강을, 금수저의 행운의 부가 아니라 흙수저의 질곡을 이긴 행복한 부를, 죽음 없는 가상의 부활이 아니라 죽음을 이긴 승리의 부활을 성령의 은혜라고 말한다. 인간 개개인과 사회 전체가 앓고 있는 질병과 불의, 죄와 악을 이겨내게 하는 소금이 십자가 복음임을 선포하고 실현하자는 것이다.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서 말이다. 성령은 십자가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세주라고 확신시키신다.
또 하나는 성령은 ‘창조의 성령’(Spiritus creator)이라는 고백이다. 성령이 하나님의 영이시기에 성령은 첫 창조의 영이시다. 동시에 하나님은 창조의 역사를 성령을 통하여 완성하시기에 성령은 재창조의 영이시다. 십자가 구원에 함께 하신 성령은 부활에도 함께 하셨다. 성령은 새로운 피조물의 성령이시다. 구속 받은 인간과 세계를 종말의 완전한 구원으로 이끄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성령운동은 구원받은 개개인들을 성화의 과정을 거쳐 완전한 구원으로 이끄는 운동이다. 새로 거듭나는 부활의 희망을 개개인과 동시에 온 누리 세계에도 펼친다. 교회로 말하자면 ‘개혁된’ 교회로 하여금 ‘개혁하는’ 교회로 이끈다. 그래야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전위대로서 하나님 나라의 희망의 빛을 발할 수 있다.
‘순복음’으로 정체성을 확립한 기쁨을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조용기 목사와 함께 구체적인 결실로 표출했다. 오직 여의도순복음교회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두 가지만 실례로 들어 본다. 하나는 ‘세계 복음화’ 운동에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조용기 목사가 앞장서서 매진하고 있는 점이다. 단순히 성령의 은사를 나누게 하는 특별집회가 아니고, 온 세계에 그리스도를 반석으로 삼는 하나님 나라를 성령운동을 통해 온 교회가 함께 세워나아가자는 세계 복음화
운동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또 하나의 실례는 오늘과 내일의 세계에 희망을 전하기 위해 <국민일보> 설립을 통한 ‘미디어 선교’를 과감히 시작한 점이다. 국민일보는 ‘인간, 자유, 진실’을 모토로 삼았다. 이 모토는 우리 국민과 사회가 염원하는 희망의 열매들이다. 여러모로 감히 엄두도 내기 힘든 일간지 신문을 발행하여 미디어 선교를 하는 일은 분명히 인간의 지혜와 힘을 넘어선 성령의 능력이요 성령의 역사이고, 한국의 교회 상황에서 순복음을 신앙적 정체성으로 삼는 순복음목회자와 순복음교회만이 감히 밀고갈 수 있는 결단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이것이다. 이런 선교 매체를 스스로의 소유 속에 파묻지 않고 한국교회 전체에 기꺼이 위임한 것 자체도 진정으로 ‘순복음적’ 결단이라는 점이다.
구속의 영이면서 동시에 창조의 영이신 성령의 역사는 현실 고착이 아닌 열린 미래를 지향한다. 모든 인간에게 열려있다. 온 시간대에 열려있다. 온 세상에 열려있다. 온 피조물에 열려있다. 이 열림 속에는 십자가의 구원이 반석이 되어 있고, 부활의 희망이 열린 문으로 자리하고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성령역사의 교회이기를 간구하며 동시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