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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60주년>희망목회 60년 조용기 목사 특별인터뷰


한국은 물론 전세계에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는

오중복음·삼중축복·4차원의 영성 쉼없이 전한 위대한 소명


조용기 목사는

▶1936년 2월 14일 부친 조두천 장로와  모친 김복선 권사의 맏아들로 출생
▶17세에 폐결핵으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던 중  예수님 영접
▶1958년 3월 순복음신학교 졸업  최자실 전도사와 5월 18일 대조동에 교회 개척
▶가난한 동네에서 시작된 순복음의 희망목회는 한국과 세계교회에 불같은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며 세계 선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침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세계 최대교회로 성장시키고 2008년 원로목사 추대
▶업적
 1976년 CGI 설립
 1988년 국민일보 설립
 1992년 세계하나님의성회 총재 역임
 1999년 사단법인 선한사람들(굿피플) 설립
 2000년 DCEM총재
 2011년 순복음선교회 총재
▶상훈
 1982년 대통령 표창(내무부) 홀트학교 건립기금 및
 장애아동 복지사업
 1996년 국민훈장 무궁화장(보건복지부)
 심장병어린이 수술지원 및 소년소녀가장돕기
 2005년 더 패밀리 오브 맨 메달리온 수상
 (미국 뉴욕기독교교회협의회)
 2007년 자랑스런 한국인 인증서 수여(미연방의회)
 2010년 마틴 루터 킹 메달리온 수상


<조용기 목사님 60주년 인터뷰> 

“되돌아보니 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피어난 ‘희망 목회’
‘천막 인생’ 오중복음·삼중축복 통해 변화
주 안에서 긍정적 생각·꿈·믿음·말 품어야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신앙 고백 돼

  

※ 교회창립 60주년을 맞아 본지는 조용기 원로목사와 특별인터뷰를 갖고 절망의 시대에 꿈과 비전을 선포한 희망목회 60년의 의미를 짚어봤다.

1. 우리 교회 창립 60주년· 목회 성역 60년이 됐습니다. 목사님의 감회가 궁금합니다.
▶▶ 하나님께서 성도를 일으켜 교회가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성도들이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며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길’ 간구했습니다. 또 십자가 은총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길 늘 기도했습니다. 오늘날에 이르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2. 우리 교회의 초창기 대조동 시절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 남대문시장에서 24인용 미군 텐트를 사서 리어카에 싣고 대조동까지 걸어온 것이 기억납니다. 천막 칠 곳이 없어 남의 깨밭에 텐트를 쳤습니다. 그때 최자실 목사님과 순복음의정부교회 박종선 목사님과 같이 천막을 쳤습니다. 대조동 시절 최자실 목사님이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목회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최자실 목사님의 헌신 덕분입니다. 천막교회 안에는 가마니를 깔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전쟁 후라 대부분 사람들의 삶은 천막 같은 인생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천막인 것이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천막 인생’이 오늘날 상상 초월 이상으로 변화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나의 삶
감사의 연속·복음을 전하는 꿈

나의 목회철학
오중복음과 삼중축복
생각·꿈·믿음·말(4차원영성)

나의 행복시절
고난과 영광의 여의도 성전

나의 기억
지구 120바퀴 돌며 복음전한 일
모스크바성회·브라질성회

나의 희망목회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나의 꿈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3. 그 당시 성도들 중에 기억에 남는 성도가 있으신가요.
▶▶ 가난하고 병자가 많았던 시절입니다. 모두에게 희망이 필요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죄용서 받고, 의로움을 얻고, 거룩해지고, 병이 낫고, 저주에서 해방되고, 죽음에서 부활하는 희망 복음을 전했습니다. 주변에서는 기복신앙이라고 했지만 진실로 십자가를 통한 희망 복음을 전해야 했습니다.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은 그 시절 많은 사람들을 살렸고, 오늘도 살리고, 장차 살리는 역사를 일으킬 것입니다.
 당시 순복음의 신앙으로 살아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술주정꾼 남편과의 사이에서 9남매를 낳고 병들었던 이초희 씨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살아난 것이 특별히 기억에 남습니다. 아내가 살아난 것을 보고 남편과 자녀들이 변화됐고 그 가정이 살아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시력을 잃고 누이의 손을 잡고 천막교회에 왔던 한 소년이 생각납니다. 신앙이 그를 변화시켰고 이후 소년은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국무부 차관보까지 올라갔습니다. 강영우 박사입니다. 하나님을 붙들면 모든 사람들은 살아납니다.
 
4. 천막교회 시절, 지금의 세계 최대 교회를 꿈꾸신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 교회를 개척했을 때 지금처럼 세계적인 교회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습니다. 다만 300∼400명 모이는 교회가 되면 감사하겠다고는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의 생각을 바꿔주셨습니다. 꿈이 달라지고 믿음이 달라지자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남들은 나를 비웃었지만 나는 한국에서 제일 가는 교회를 세우고,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꿈을 품었습니다. 사람들은 나에게 “꿈을 조금만 낮추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꿈을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대조동 교회가 부흥되면서 교회는 60년대에 서대문으로 옮겼습니다. 서대문 시대가 열리면서 놀라운 부흥이 일어나 1만 명이 모이는 교회가 됐습니다. 주일이면 일대 교통이 마비됐고, 교회 앞길을 지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서울시가 교회를 도심에서 벗어난 곳으로 옮겨줄 것을 간청했습니다. 교회도 더 넓은 곳으로 옮겨야하는 것이 불가피했습니다. 그때 여의도 모래벌판 개간 소식이 들려왔고, 하나님의 인도하심 따라 교회는 아무 것도 없던 여의도로 이전하게 됐습니다. 

5. 가장 힘들었지만 반대로 행복했던 시절이 여의도 성전 건축 때라고 말씀하셨는데요.
▶▶ 여의도로 교회 이전을 결정하고 1969년 공사가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불어 닥친 오일쇼크와 달러 하락은 교회 건축 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가져왔습니다. 위기가 닥치면서 사람들은 나를 향해 ‘실패’라고 손가락질했습니다. 뼈대만 앙상하게 올라간 성전에서 성도들과 울며 기도했습니다. 추운 겨울 엎드려 울며 기도할 때 애지중지하던 놋그릇과 놋수저를 건축 예물로 드린 할머니를 보고 많은 성도들이 감동을 받아 건축 헌금을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1만 성도를 수용할 수 있는 성전 완공을 보면서 고난이었지만 영광이었음에 감사했습니다. 아름다운 성전이 건축된 것은 성도들 눈물의 기도와 헌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6. 만약 20∼30대로 돌아가신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으신가요.
▶▶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오늘날까지 왔습니다. 누군가를 도와주는 일을 하고 싶었으니 아마 의사가 되려고 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7. 심장병 무료수술을 오랫동안 후원해오셨지요.
▶▶ 예전에는 심장병으로 고통당하는 어린이들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1984년 본격적으로 국내 심장병 어린이들을 위해 수술을 진행했고, 국내 환자들이 점차 줄면서부터는 제3세계 어린이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무료수술을 진행했습니다. 그 수가 벌써 5000명을 넘어섰습니다. 병으로 인해 고통당하나 돈이 없어 수술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항상 눈물이 났습니다.

8. 북한에 심장전문병원을 설립하시려 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나요.
▶▶ 다른 나라 사람들도 돕는데 같은 민족을 도와야 하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북한에도 심장병으로 고통 당하는 이들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북한을 방문해 구체적인 얘기가 있었고, 공사가 활발히 진행됐습니다. 하지만 이후 남북 관계가 어려워지면서 오랫동안 공사가 중단됐고, 최근 남북 관계가 호전되면서 공사가 다시 시작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담임인 이영훈 목사 중심으로 공사 진행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외관은 다 됐으니 의료 장비 설치 등 6개월 정도면 공사가 마무리 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9. 목사님 최근 근황은 어떠하신지 궁금합니다.

▶▶ 지금도 새벽 2∼3시면 일어나 성경을 읽습니다. 서대문 교회 시절 새벽에 일어나 깜빡 잊고 잠옷을 입은 채 설교에 나선 적이 있습니다. 강단에 올랐는데 사람들이 나를 보고 정신없이 웃길래 봤더니 파자마를 입고 있었습니다. 정신없이 사역할 때였지요. 그때나 지금이나 새벽에 일어나 성경을 묵상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10. 지금까지 많은 나라에서 해외 성회를 인도하셨는데 기억에 남는 성회가 있으신지요.
▶▶ 지구를 120바퀴 돌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기억에 남는 성회로는 1992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성회입니다. 마지막 날 크렘린 궁의 입장이 금지 돼 인근 공원에서 성회를 인도했는데 더 많은 인파가 모이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1997년 브라질 성회 또한 150만여 명이 모인 대 군중 야외성회였습니다. 인파를 뚫고 강단에 오를 수 없어 헬기를 타고 입장했던 기억이 납니다.

11. 목사님은 60년 동안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목회를 하셨습니다. ‘절망적’이라고 말하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신다면요.
▶▶ 희망적인 일이 많아지려면 좌우 대립이 아닌 사랑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잘 믿고 긍정적인 생각·꿈·믿음·말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믿은대로 됩니다. 자기 자신을 비하하지 말아야 합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라고 믿으면 진짜 할 수 있게 됩니다.  성령의 역사는 희망을 안고 다가옵니다. 안된다는 말에 귀를 기울이면 정말 안 됩니다.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생각하면 성령께서 함께 해주십니다. 고난을 딛고 나아갈 때 꿈은 반드시 이뤄집니다. 청년들이 이것을 고백하고 나아갔으면 합니다. 

진행·임 훈 편집국장 / 정리·오정선 / 사진·김용두 / 편집·김성혜 기자


 

기사입력 : 2018.05.20. am 12:24 (편집)